스마트폰의 가격 인하 추세 속에 아이폰의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수입품 아이폰의 환율까지 고려하면 체감 가격은 경쟁제품 보다 훨씬 높다. 아무리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한다는 자신감이 있더라도 애플은 무슨 '배짱'으로 고가 가격을 유지했을까.
애플의 이런 고가 전략은 포화한 스마트폰 시장 변화 흐름과 이번에 함께 제시된 '임대프로그램'을 같이 살펴봐야 한다.
우선 스마트폰 시장 변화를 보자. 유럽 이통사들은 이미 2~3년 전부터 지원금을 폐지했다. 미국의 1위 이통사 버라이즌도 연내에 지원금 지급을 중단할 계획이다.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지난해부터 지원금을 폐지한 '순액 요금제'를 운영 중이다. 인도·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은 선불 요금제 선호가 높아 시장 초기부터 지원금 중심의 마케팅이 활발하지 않았다. 이른바 선진 시장은 물론 신흥시장에서도 ‘무지원금’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 변화는 스마트폰 시장 포화 속에 통신사들이 더 이상 보조금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과다. 그리고 이는 제조사들이 스마트폰 출고가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얼핏 보면 애플의 고가 전략은 이런 흐름과 정반대다. 하지만 제조사 애플도 이런 시장 변화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신제품 출시와 함께 발표한 임대 프로그램이 숨은 열쇠다.
애플은 ‘아이폰6s’를 발표하면서 신형 아이폰을 구매할 때 기존 아이폰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1년마다 새 아이폰을 제공하는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물론, 아직은 미국에서만이다. 649달러(한화 약 73만4500원, 부가세 별도)부터 시작하는 아이폰6s를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매달 32.41달러(3만6700원)만 내면 사용할 수 있다. 1년이 지나면 사용하던 아이폰을 반납하고 새 아이폰을 받을 수 있다.
아이폰 사용자는 계속해서 신형 아이폰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간 스마트폰 고사양화와 가격 인상은 모든 제조사의 공통된 현상이었고, 통신사의 지원금이 구매를 뒷받침했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제조사 출고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플은 10년 정도 굳어진 아이폰 마니아층의 이용 패턴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다.
애플은 고가 전략을 유지하되 가장 큰 시장인 '안방' 미국에서는 단기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해마다 새 아이폰을 바꾸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출시했다. 아이폰 마니아라면 이 선택을 마다하지않을 거란 판단을 한 셈이다.
여기에 중고폰 가격이 높다는 점도 고려한 전술로 풀이된다. 거둬들인 스마트폰을 ‘리퍼비시폰’으로 재판매해 추가 수익도 거둘 수 있으니 애플로서는 결코 손해가 아니다.
결국 시장포화로 신규 구매자를 찾기 어려운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애플은 아이폰 교체주기를 줄여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다만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의 비용은 아이폰 한 대의 절반 가격보다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애플이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세계에서 동시에 시작하지 못한 이유다.
삼성전자 미국법인도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예의주시하면서 시장 변화에 따라 '갤럭시S' 시리즈와 '노트' 시리즈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시장을 볼 차례다. 애플은 한국에도 아이폰 임대 프로그램을 적용할까.
국내에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 유통법)이 있다. 이 법을 토대로 이동통신 시장 질서가 자리잡힌 국내 시장에서 휴대폰 제조사들이 직접 임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타당할지 제조사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통신사와 관계가 중요한 시장에서 자급제폰을 확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데다 국내는 임대라는 제도에 거부감이 적지 않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통사는 서비스만 제공하고 제조사는 단말기를 판매하는 분리공시제도의 도입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아이폰보다 중고폰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도 국내 제조사가 쉽게 임대 프로그램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오히려 제조사가 아닌 SK텔레콤이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과 유사한 임대 사업을 검토 중이다. SK텔레콤이 구상하는 임대 사업은 단말기 유통법 이후 선보상판매와 같은 제도가 유사 지원금 논란으로 폐지되면서 나온 대안이다.
휴대폰을 판매하지 않고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빌려준 뒤, 사용하던 휴대폰을 반납하도록 하는 형태다. SK텔레콤은 휴대폰을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임대 사업을 진행하면, 선보상제도와 같이 방통위의 제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SK텔레콤이 임대 사업 도입 여부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다. 여기에 아이폰보다 삼성전자 등 국산폰 인기가 더 높은 국내 시장에서 휴대폰 출고가가 낮아지는 추세라 임대가 호응을 얻을 지도 미지수다.
이통 업계 관계자는 “지원금이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단말기 유통법에 맞춰 휴대폰 제조사가 출고가를 인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휴대폰 가격이 낮아지거나, 리스 방식으로 전환해 휴대폰 교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스마트폰 가격 인하 경쟁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신흥시장은 물론 아직 스마트폰의 미개척지인 저개발국 시장은 중국이 빠르게 잠식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도 타이젠폰을 앞세워 인도 시장에 이어 러시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삼성전자가 지난 14일 발표한 최신 타이젠폰 Z3의 가격은 15만원에 불과하다.
선진시장에서도 이전 제품보다 출고가를 낮추며 이용자 찾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 시리즈와 갤럭시S 시리즈 등 최고급 제품군이 가격도 꾸준히 낮추고 있다. 갤럭시노트 5의 미국 출시 가격은 779달러(88만1000원)은 826달러인 갤럭시노트4에 비해 50달러 정도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