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오형 제도가 있었다.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이 그 다섯 가지의 벌의 목록이었다. 이중 유형, 즉 유배형은 형기가 정해지지 않은 일종의 무기 구금형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무기징역으로, 사형에 다음가는 중형이었다.
정치적인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거나 왕이 사면 조치를 내리기 전에는 유배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들. 유배자 중에는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도 있었고, 조선의 15대 임금인 광해군도 있었다. 조선 후기의 대실학자 정약용과 '하멜표류기'를 쓴 외국인 하멜도 유배를 당했다.
사람만이 아니었다. 태종 11년 우리나라 땅을 최초로 밟은 코끼리도 유배를 당했다. 1411년 일본 국왕이 태종에게 선물한 코끼리가 말을 기르는 사복시에서 지내다 사람을 밟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 이 현행범은 해도(섬)로 유배를 떠났으나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불쌍한 모습을 관찰사에게 보인 끝에 풀려나 육지로 돌아온다.
이렇게 조선 시대의 유배라는 형벌 제도에는 500여 년을 이어져 온 만큼, 긴 세월로부터 파생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다. 사람들이 역사를 통해 기억하는 유배는 주로 유명한 정치인들뿐이지만, 사실 유배형은 일본에 사법권을 박탈당한 1909년 이전까지 조선 선비의 1/4가 경험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한 형벌 중 하나였다.
선비들이 낯선 땅에 홀로 떨어져 할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본디 글을 쓰고 사색하는 것이 업무인 이들은 역시나 유배지에서 주옥같은 문장들을 남겼다. 특히 이 책의 지은이 염은열이 주목한 것은 두 편의 유배 가사였다.
"옥식진찬 어디가고 맥반염장 되었으며, 금의화식 어디가고 현순백결 되었는고…" 조선판 오렌지족인 안도환이 쓴 '만언사'. "녹의홍상 고은 몸이 만장암 구름 위에서 사람을 놀래키네 어와 기절하겠구나…" 유배지에서 기생과의 사랑놀음 이야기를 그린 '북천가'.
이 두 편의 유배 가사는 당시 대중소설로서 부녀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유배의 적막을 옛 화려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생놀음의 즐거움으로 남긴 이들에게 유배는 형벌이 아니라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염은열 지음. 꽃핀자리 펴냄. 272쪽/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