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휩쓸었던 ‘포켓몬 고’ 열풍이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지만 “우리는 왜 저런 게임을 못 만들었냐”는 의문은 여전하다. 이미 널리 쓰이는 기술들을 활용한 게임이라면 한국 게임사들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혁신적인 제품을 먼저 내놓지 못한 점에 대한 질책은 당연하다.
다만 한국에서 ‘포켓몬 고’가 탄생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증강현실(AR) 게임 개발에 뛰어들기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의 ‘포켓몬스터’라는 지적재산권(IP)이 없었다면 이 정도 흥행을 거두긴 어려웠을 것이다. ‘포켓몬스터’는 게임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문화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1996년 등장한 이후 20년째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포켓몬스터’와 같은 콘텐츠가 존재할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 콘텐츠 중에서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성공한 경우는 많다. 다만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등 특정 영역에서 성공을 거뒀을 뿐 다른 영역으로 확장에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대부분 단발성 흥행에 그친 것이다. ‘포켓몬스터’처럼 독창적인 콘텐츠를 다른 형태로 재활용하면서 장기간 인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콘텐츠 OSMU(원소스멀티유즈)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는 건 한국 문화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포켓몬 고’가 인기를 끌자 AR 게임 개발 붐이 일어나고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포켓몬스터’ 정도 파급력을 가진 IP 없이 제2의 ‘포켓몬 고’를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문화산업 전반에서 콘텐츠 스토리를 확장하는 데 투자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 지원책 역시 여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전 세계 최고 IP로 꼽히는 마블코믹스의 만화책이 첫 출간된 해는 1939년이다. 마블은 80여년간 끊임없이 스토리를 확장하면서 IP 경쟁력을 키웠다. 훌륭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선 재료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