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는 출시 초반 대거 확보한 유저를 얼마나 오래 끌어안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른바 '집토끼'들을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다양한 BM(비즈니스모델)과 상품을 내놓는데, 그 중 하나가 '클래스 체인지(직업 교체)'다. 말 그대로 캐릭터의 직업을 바꿀 수 있도록 한다. 주로 신규 클래스가 나올 때 상품이 같이 풀린다.
클래스 체인지를 통해 낯선 캐릭터를 갖게 된 이들은 처음 보는 스킬들로 가득 찬 스킬창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눌러보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각 스킬의 장점과 단점을 빨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습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신규 클래스 스킬의 장점에만 매몰돼 자칫 게임 자체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주요 게임들은 클래스별 밸런스를 맞추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다. 게임 내에서 특정 직업군에 유저들이 쏠리면 '다양성'을 전제로 한 게임 내 경제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스별로 장점과 동시에 단점을 심어 놓는다.
이를테면 '도적' 클래스의 필살기가 '전사'보다 더 강한 타격을 줄 수 있지만, 도적의 HP(체력)가 적은 식이다. '암살자'의 필살기는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대신 공격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다. '마법사' 클래스가 아군에게 치유 마법을 쓰는 동안 자신의 몸은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
게이머들은 이 같은 각 클래스별 스킬에 대해 커뮤니티 사이트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미리 '공부'를 한다. 최근에는 게임별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보며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고, 여러 '실험'을 거쳐서 나온 일종의 '모범답안'을 보며 스킬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게임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클래스가 가진 가장 강한 공격을 할 때는 이에 따른 후폭풍이 있다. 이른 바 기술 페널티다. 대표적인 게 '쿨타임'이다. 한번 스킬을 쓰면 재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스킬창이 비활성화되는 것이다.
일부 스킬들은 상대방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대신, 자신의 HP를 갉아먹는 경우도 있다. 기존 클래스에 없던 페널티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해당 스킬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거보다 빠따(공격력을 뜻하는 게임 속어)가 강해졌다"며 마구 휘두르다간, 어느 새 피골이 상접한 캐릭터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페널티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른 스킬과 쿨타임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A스킬만 썼을 뿐인데 해당 쿨타임이 끝날 때까지 B~D 스킬도 못쓰게 된다. 일부 악독한 BM을 가진 MMORPG에서는 스킬을 쓸 때마다 유료 재화를 조금씩 사용하게 만들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실에서 검사→대통령으로 클래스 체인지를 한 사례다. 검사 시절 스킬창이 수사·기소 등으로 제한적이었다면, 대통령이 되면서는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넓은 스킬창을 보유한 현실 인물이 된 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클래스 체인지에 대해 간과한 게 있다. 같은 클래스를 지녔던 전직 대통령들이 스킬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던 이유다. 대표적인 예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이다.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등 전임 대통령들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극히 일부 사용했던 해당 스킬을 윤 대통령은 임기의 절반을 지나는 동안 20회 넘게 썼다. 해당 스킬을 사용하면 따라오는 정무적인 부작용 등에 대해 알려줄 온라인 커뮤니티가 없었기 때문일까.
비상계엄 선포 역시 마찬가지로 풀이된다. 대통령의 스킬 창에 존재하는 버튼이지만,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나, 스킬 사용에 따라오는 페널티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클래스 체인지를 너무 급하게 한 탓에 적응 기간이 부족했다는 말도 나온다.
한 게임엄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게임에서와 달리 현실판 클래스 체인지는 공부하기도 어렵고 이해를 도와줄 이들도 부족했던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MMORPG를 즐기면서 클래스 체인지를 경험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