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 최상급 연구자의 논문에 참여했다고 이름을 올린 공동 저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동연구 실적이 연구자의 실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되면서 나타난 '공동 저자 인플레이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국제학술지 '연구에서의 책임(Accountability in Researc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대와 연구논문 분석 기업 '엘스비어'가 매년 발간하는 '세계 최상위 2% 연구자'에 속한 일부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공동 저자 수가 이례적으로 많은 현상이 발견됐다.
'세계 최상위 2% 연구자'는 22개 대주제, 174개 세부 주제별 논문의 피인용도를 기준으로 연구자의 영향력을 평가한다. 논문이 인용된 횟수가 높을수록 학계에서 중요한 연구 결과로 인정받았다고 본다. 지난해 전 세계 연구자 총 21만 7097명이 이름을 올린 가운데 국내에서는 연구자 2364명이 선정됐다. 2023년 대비 12% 늘어나 연구자 수 기준 전 세계 15위였다.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 석유 및 광물대 연구팀은 2023년 최상위급 연구자 명단에 등재된 연구자들이 최근 발표한 논문을 중심으로 각 논문에 이름을 올린 공동 저자가 몇 명인지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연구 기획 단계부터 결과 분석, 논문 작성 등 전 과정에서 한 부분이라도 기여한 연구자라면 공동 저자로 기재한다. 국제적인 대형프로젝트 중에는 1000명 이상의 연구자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경우도 많다. 경력을 쌓는 중인 신진연구자라면 최상위 학술지에 발표된 중요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게 경력에 유리하다. 연구실적 평가 시 경쟁력 있는 요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전 세계 상위 2%에 드는 학자 중 19만 6306명이 1년간 출판한 논문 수는 212편이었지만 해당 논문에 등재된 공동 저자의 수는 5892명이었다. 논문 1편당 27명 남짓한 공동 저자가 이름을 올린 셈이다. 연구팀은 이를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논문 출판 수와 비교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실에서 나온 논문 출판 수는 연간 28.3편으로, 등재된 공동 저자 수는 173명이었다. 단순히 환산하면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 1편에 참여한 공동 저자 수는 6명 안팎이다.
연구팀은 "노벨과학상 수상자야말로 '경력의 정점'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대 결과가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다"며 "공동 저자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다면 (실질적 기여 없이 논문에 이름을 올려주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논문의 피인용도, 논문 출판 수 등 정량적 지표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학계 특성상 연구 자체의 질을 높이기보다 평가 지표를 채우기 바빠 나타난 '공동 저자 인플레이션' 현상"이라고 했다.
공동연구가 실제 연구의 질을 향상하지 못했다는 결과도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 정보컴퓨터학과·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23년 1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원격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비율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지만 정작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공동연구가 연구의 질을 좌우하는 기획 단계보다 연구 후반부의 기술적 분석 단계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공동연구를 장려하는 '글로벌형' 국가 R&D(연구·개발) 과제가 대폭 늘어남에 따라 이같은 무의미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국내에서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공학 분야 한 교수는 "'국제화 지수'라는 항목은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연구에 얼마나 다양한 국가의 기관과 연구원이 참여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며 "국제화 실적을 높이기 위해 학술적 이득은 없는 국제공동연구를 장려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