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정상급 K-AI(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해 전국 연구단지가 숨 가쁘게 움직인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연구진과 현장 공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산업계가 한자리에 모였다. 목표는 휴머노이드의 미세한 손끝 감각부터 빠른 판단력을 요하는 두뇌까지 오로지 한국의 기술력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키 160㎝, 몸무게 55㎏. 한국형 AI 휴머노이드 '카이로스'의 '신체 스펙'이다.
카이로스는 4월 한국기계연구원 50주년 기념식에서 최초 공개됐다. 카이로스는 뚜벅뚜벅 걸어 나와 청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대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 손을 번쩍 들어도 앞으로 넘어지지 않았고, 참가자들과 '악수 퍼포먼스'를 하는 중에도 몸을 휘청이지 않았다. 보행과 균형 잡기를 스스로 해낸 셈이다. '자율성장 AI휴머노이드 전략연구단'이 개발한 '카이로스 0.5' 버전이다. 전략연구단은 기계연이 주관해 2025년 출범한 산·학·연 공동연구그룹이다.
한발 더 나아간 '카이로스 1.0'은 이르면 올 연말, 늦어도 2027년 초 공개된다. 박찬훈 연구단장은 "구동이 더 안정되고 무게도 가벼워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카이로스 1.0 모델은 공개 후 기계연 협력 연구기관에 배포한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개발 중인 '자율성장 뇌'는 향후 탑재할 예정이다. 시각·청각·촉각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사람의 뇌처럼, 휴머노이드에 탑재될 파운데이션 모델이 대뇌와 소뇌의 역할을 맡는다. 장애물과 마주칠 때 즉시 다음 움직임을 판단하는 능력, 대화 시 0.3초 이내로 반응하는 능력이 이 모델의 성능에 달려있다. ETRI에 따르면 인공지능창의연구소는 올 하반기 휴머노이드에 특화한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과 관련 데이터세트를 공개할 계획이다.
완성된 카이로스는 우선 KG모빌리티(KGM)의 자동차 생산 공정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숙련공 대비 작업 성공률 90%, 작업 속도 70%인 '수습 엔지니어 수준'이다. 기계연과 KGM은 앞서 3월 기술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박 단장은 "R&D 1차년도 중반쯤 서로 뜻이 맞아 협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30년까지 KGM의 완성차 조립·검사 공정에 카이로스를 투입하는 게 목표다. KGM은 이를 위해 기계연에 자사 자동차를 제공하고, 공장을 실증 환경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LG그룹과 손잡았다. 지난달 출범한 '민관협력 기반 AI 휴머노이드 원천기술 고도화' 사업이다. 카이로스가 자동차 공정에 투입된다면, KIST와 LG의 'KAPEX'(케이펙스)는 우선 병원 등 집단거주시설에 투입된다. 가벼운 청소와 정리 정돈부터 병원 내 쓰레기 수거, 물품 배송 등 실생활에 필요한 보조 업무를 대신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연구단은 2030년까지 로봇 20대를 제작해 한림대 성심병원 의료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사업을 총괄하는 이종원 KIST 휴머노이드연구단장은 "하루 8시간씩, 1개월간 연속적으로 작동하며 작업 완료율은 90% 이상인 휴머노이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국내 학계·산업계·연구계 총 11개에 이르는 기관·기업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LG그룹의 다방면 참여가 특히 두드러진다. LG AI연구원이 개발 중인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은 케이펙스의 뇌가 된다. LG전자는 풀스택 제조 경험을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양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휴머노이드의 에너지원이 될 배터리를 맡는다. 목표는 350Wh/kg(킬로그램 당 와트)급 황화물계 전고체전지를 개발하는 것인데,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성능이 떨어지는 전지의 특성을 극복하고 케이펙스가 여러 작업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게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김명주 ETRI AI안전연구소장은 "앞으로는 휴머노이드에 특화된 윤리 강령의 필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될 것"이라며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고 했다. AI안전연구소(AISI)는 국가 차원에서 AI 위험을 정의하고 안전도를 평가하기 위해 2024년 문을 연 국가연구소다. 미국, 일본, 영국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국제AI안전연구소 네트워크의 회원이다.
로봇계에는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로 대표되는 '로봇 3원칙'이 있다. 2004년 열린 '세계 로봇 선언'에서 로봇의 책임과 역할이 규정됐다. AI 분야에서도 전 세계 193개국이 동의해 2021년 확정된 표준 규범이 있다. 'AI는 인간에게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게 제1원칙이다.
김 소장은 "휴머노이드 시대의 윤리는 기존 로봇, AI 윤리와는 달라야 한다"고 했다. '생성형 AI'가 탑재돼 물리 세계에 진출한 로봇은 전 인류가 처음 겪는 형태라는 것이다. 1940년대 나온 로봇 강령은 생성형 AI 기반의 로봇을 고려하지 않는다. AI 윤리는 컴퓨터를 벗어나 인간과 직접 접촉하는 물리적 AI를 담아내지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에 특화한 표준 규범은 아직 없다. 한 번 규범이 제정되면 전 세계 휴머노이드 산업이 이 규범을 따르게 된다. 김 소장은 "휴머노이드가 향후 공장이나 병원에 투입되면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이때 책임 소재는 로봇의 센서, 모터, 판단 능력 등 다방면에 걸친 표준 규범에 따라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정의할 윤리 강령을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