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파수AI는 겉으로 보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회사였다.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고 수익성도 떨어졌다. 데이터보안이라는 확실한 본업은 있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장이 멈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만했다.
회사 안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번 팔고 끝나는 영구 라이선스를 매년 돈을 받는 구독형으로 바꿨다. 당장은 매출이 줄어드는 선택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AI(인공지능) 사업을 위해 사람을 뽑고 GPU와 클라우드에 돈을 썼다.
이지수 파수AI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나 "매출이 정체된 상태에서 AI에 투자하다 보니 이익이 줄었다"며 "4년 정도 지나면서 시장에서는 '파수가 그냥 여기까지인 회사인가'라는 시각도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CFO는 "현재까지 실현한 매출과 이미 확보한 수주를 합치면 지난해 전체 매출을 넘어섰다"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월등히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직 회계상 매출로 잡히지 않은 계약까지 포함한 수치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AI가 있다. 파수AI는 2024년부터 AI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첫해에는 고객사에서 작은 개념검증(PoC)을 하며 가능성을 시험했다. 지난해부터 실제 구축사업이 늘었다. 올해는 기존 고객의 고도화와 다른 기관으로의 확산이 이어지고 있다.
숫자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해 AI 사업 매출은 1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올해는 현재까지 약 20억원을 올렸다. 이 CFO는 진행 중인 수주까지 감안하면 올해 약 30억원까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다. 연구자가 새로운 과제를 준비하면 AI가 과거 연구과제와 산출물을 찾아 연구계획서 작성을 돕는다. 2024년 시작해 지난해 본격 구축했고 올해 또 고도화했다. 이 CFO는 "다른 연구원에서 '우리도 하겠다'고 하는 식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 전체가 한꺼번에 도입하는 기존 보안제품과 달리 AI는 부서별 업무에 맞춰 하나씩 들어간 뒤 옆 부서로 번져가는 방식이다.
올해는 오래된 본업도 다시 힘을 받고 있다. AI를 활용한 사이버공격이 확산하면서 보안에 돈을 쓰는 기업의 범위가 넓어진 영향이다. 과거에는 대기업이나 기술기업이 주요 고객이었다면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 방산·반도체·조선·자동차 등 호황 업종에서는 이런 흐름이 더 뚜렷하다. 대기업이 협력사에 보안 수준 강화를 요구하면서 보안투자가 공급망 아래쪽으로 번지고 있다. 파수AI의 올해 데이터보안 수주 역시 크게 늘었다.
파수AI의 유지관리 계약 갱신률은 95% 이상이다. 파수AI는 신규 AI 제품을 중심으로 연간 구독형 라이선스를 늘리고 있다. 매출이 매년 4분기에 몰리는 구조를 완화하고 반복매출을 키우기 위해서다.
지난 3월 회사 이름에 'AI'를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수는 데이터보안 시장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AI 회사를 찾는 고객에게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외부에 AI 사업을 알리는 동시에 직원들에게도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겠다는 선택이었다. 이 CFO는 "지금 잘되는 것에 안주하면 안 된다"며 "우리 회사가 이제 AI 회사라는 방향을 임직원과 가장 빠르게 공유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고 말했다. 5년 뒤 AI 매출 비중을 묻자 그는 "AI 회사라고 하려면 50%는 해야죠"라고 답했다.
다음 시험대는 미국이다. 파수AI는 올해 기존 미국법인과 현지 AI·클라우드 컨설팅 회사를 합쳐 사업을 다시 짰다. AI를 도입하려는 기업에 데이터 관리부터 보안, AI까지 연결해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미국사업은 투자비 부담으로 적자를 이어왔다. 목표는 내년 손익분기 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