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울 노원구에 소아과를 개원한 40대 의사 A씨는 지난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병원 문을 닫았다. 문을 닫기 전 이 병원의 월 매출액은 2100만원 안팎이었다. 직원 임금과 각종 세금 700만원, 의료장비와 인테리어 감가상각 250만원, 월 임대료와 대출 이자로 450만원이 지출됐다.
A씨의 세후 수입은 약 400만원. 그나마 개원 초기 1년간은 방문 환자가 적어 A씨가 집에 가져가는 돈이 월 200만원도 안됐다. A씨는 "400만원을 정점으로 수입이 계속 떨어져 폐업을 결심했다"며 "돌이켜보면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리베이트를 받지 않은 게 결정적 실수였던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낮은 수가에 달콤한 유혹 '리베이트'= 개원의들의 경영난이 심화 되면서 리베이트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폐업한 의료기관 수가 4652개에서 2013년 5256개로 4년 만에 13.0%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개원 의료기관이 6461개, 6416개로 차이가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개원의들의 경영난은 환자들이 동네병원보다 대형병원을 선호하는데다 의료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와 내년 의료수가 인상률을 1.99%, 2.37%로 책정했다.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수준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같을 경우 병원 수익 증가율이 운영비 증가율을 따라갈 수 없어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이는 개원의들이 제약사의 리베이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리베이트를 단순히 제약사들의 과당 경쟁 탓으로 볼 게 아니다"라며 "현행 의료수가 체제에서는 의사들이 편법행위의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아 구조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고·마케팅 막힌 상황에서 리베이트가 유일한 출구"= 제약사는 제약사대로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 한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초기 투자비에 비해 환자 수가 적은 병원 중 일부가 대놓고 리베이트를 요구할 때가 있다"며 "영업으로 매출을 올려야 하는 제약사 입장에서 이 같은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의사 처방이 필수인 전문의약품의 경우 마케팅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제네릭(복제약) 경쟁이 치열한 국내 전문의약품 시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제약사들은 제네릭을 위주로 시장에서 경쟁을 벌인다. 의사들이 약효 차이가 없는 다수 약품 중 하나를 골라 처방하는 만큼 제약사들은 리베이트를 제공해서라도 선택을 받으려 한다. 환자는 의사 처방을 전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전문의약품 정보를 접하기도 어렵다. 전문의약품 광고가 의약 전문지에만 허용됐을 뿐 신문이나 방송 노출은 금지돼 있어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명분으로 전문의약품 광고를 제한하고 있어 제약사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릴 기회가 없다"며 "여러 제약사의 똑같은 약품 중에 자사 제품이 처방되게 하려면 리베이트 말고 어떤 방법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리베이트, '합법의 영역으로'…사회적 합의 필요= 리베이트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으려는 논의 없이 처벌 수위만 높이다 보니 리베이트 제공 수법만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최근 한 지역 병원 이사장이 차명으로 약품 도매상을 차린 뒤 제약사들로부터 과도하게 할인된 가격으로 약을 받아 병원에 정상가에 팔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제약회사가 정상가와 할인가의 차액을 병원 이사장에게 리베이트로 제공한 신종 수법이다.
의료·제약업계에서는 의료수가 현실화와 제약업계의 마케팅 수단 부재 등을 해소할 방안 가운데 하나로 제한적 리베이트 합법화 목소리도 나온다. 리베이트 허용 규모를 정하고 리베이트 수입에 별도 과세를 하자는 의견이다. 이 경우 리베이트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의사나 제약사는 탈세로 처벌을 받게 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리베이트를 합법화시켜 금액별 세율을 적용하면 병원의 과도한 수익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리베이트 상한선을 정하고 병원과 제약사간 리베이트 제공 사실을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사회적 시선이 있어 과도한 리베이트가 오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수준의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