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은 말 그대로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건강보험 진료만 해도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의료수가' 설정이 전제돼야 한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12일 영등포구 CCMM빌딩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한 말이다. 김 이사장은 문재인 케어 핵심 내용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하루빨리 정착시켜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치료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 반발 등 해결해야할 숙제도 많이 남았다. 의료계는 지난 5월 수만 명의 의사들이 참석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추진 반대'를 외치는 총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문재인 케어' 설계자인 김 이사장에게 현재까지의 성과와 남아 있는 과제를 물었다.
-문재인 케어, 당초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지금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다. 올해 1월에 선택진료비를 전면폐지했고, 본인부담상한제도도 개선해 환자 부담을 줄였다. 4월에는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로 환자부담금이 8만4000원에서 3만6000원으로 줄었다. 이밖에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2·3인실 건강보험 적용으로 연간 환자 부담금이 크게 줄었다.
-김 이사장은 '문재인 케어' 설계자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시절 추진하려던 정책과 현 정책의 연관성을 설명해달라.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할 때 건강보험정책연구원장이 '암' 환자에게도 건강보험 혜택을 주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다. 암 치료비가 워낙 비싸다 보니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자마자 급여보장률이 64%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보장률이 점점 떨어지더라. (병원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비급여를 한 번에 건강보험 속으로 집어 넣는 이른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이 나오게 됐다. 전면적으로 비급여를 건강보험 안으로 끌어들여야만,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계속 만들어지는 풍선효과를 없앨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2012년 문재인 후보 정책본부 공동본부장으로 있을 때 문 후보 공약으로 발표됐는데 대선에서 패배해 시행되지 못했다.
-점진적으로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것은 어려운가?
▶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박 전 대통령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급여 보장률이 또 떨어졌다. 비급여 증가로 인한 풍선효과 때문이었다.
-의료계가 생존을 명분으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어떤 대책을 갖고 있나?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전면급여화'가 시행되면 병원 경영에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의료계는 건강보험 급여로 운영이 어려웠던 부분을 비급여 진료를 통해 해결해 왔다. 그런데 완충제 역할을 해오던 비급여가 없어지게 됐다. 정부가 나서 '병원 경영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설명하지만 의료계는 정부 주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의료계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가 지속되면 대다수 병원이 문을 닫게 된다. 어느 정부가 그런 정책을 펼치겠는가.
-그렇다면 전면급여 체계 안에서 '원가+알파(α)' 의료수가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원가+α' 의료수가를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 의료수가는 진료항목에 따라 각기 다른 수가가 책정돼 있다. 어떤 항목은 '원가+α'로 설정돼 있고, 또 다른 항목은 '원가-α'다. '과잉진료'와 '과소진료'가 섞여 있다. 밖에서는 과잉진료만 주목하지만 사실은 과소진료도 있다.
신생아중환자실이 가장 대표적이다. 신생아중환자실 수가가 낮다 보니 병원들이 기피했고, 결국 전국에서 신생아중환자실 부족현상이 벌어졌다. 수가의 전면 재설정이 필요하다. 의료수가를 '원가+α'로 균등하게 만들어야 '문재인 케어'를 성공시킬 수 있다.
-'원가+α' 의료수가 설정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나?
▶현재 의료수가를 전면 재설정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원가+α' 의료수가로 설정이 되면 의사들은 자연스럽게 진단에 따라 가장 좋은 방식으로 치료를 하게 된다. 그게 시장의 묘미다.
-취지는 알겠다. 하지만 의료 원가 파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00년, 일산병원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일산병원은 의료 공공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과 함께 의료원가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원가+α' 의료수가가 설정되려면 반드시 의료원가를 알아야 하지만 대다수 병원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산병원 한 곳만의 자료로 원가를 계산하면 근거가 부족하다. 복수의 직영 병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2의 보험자 병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의료수가를 높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케어'로 인해 건강보험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혼동하기 때문에 재정 고갈 우려가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은 그해 걷은 보험료를 그해에 지출하기 때문에 재정 고갈이 있을 수 없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보험재정 고갈은 준비적립금이 줄어든다는 의미지, 재정이 줄어든다는 말이 아니다.
문재인 케어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2022년까지 약 30조6000억원이 소요된다. 의료수가 인상률을 예측해 계산한 금액이다. 내가 이사장 취임 후에 다시 계산을 해봤는데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다만 의료수가는 매년 공급자와 가입자, 건강보험공단이 합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 문재인 케어에 필요한 예산은 다소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지난 6월 마무리된 1단계 건강보험료 부가체계개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다수 가입자들이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개편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다. 2000년대에 만든 건강보험 부과체계 시스템을 18년만에 처음으로 개편했다. 기존에는 보험료만 조절했다면 이번엔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시스템자체를 바꿨다.
당초 우려와 달리 잘 마무리된 것은 개편안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역보험과 직장보험간 격차가 커 불만이 많았는데 이를 개선했다. 또 고소득층은 보험료를 더 내게 하고 저소득층은 기본 보험료만 내도록 낮췄다. 소득격차를 좀 더 잘 반영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득이 있는 사람도 피부양자로 인정받았지만 개편 안에서는 이들도 소득에 따라 보험료 부과를 하도록 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받아들여 주셨다. 사전 홍보 및 상담 등 건강보험공단 전 직원의 노력이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오는 2022년, 2단계 부가체계개편안이 반영된다. 1단계 개편 당시 민원인들이 주시는 의견을 버리지 않고 수집해뒀는데, 2단계 개편에서는 이런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겠다.
-외국인 건강보험 부정수급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은 차별없이 진료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악용했을 때다. 건보공단은 보건복지부와 함께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가입에 필요한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를 통해 부정수급을 상당부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추가적으로 외국인 진료시 '본인확인 절차'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지금도 병원은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지만 강제사항은 아니다. 이를 의무화하면 상당수의 부정수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부정수급 관련해 외국인 전용 건강보험공단을 더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있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