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300만원 주면서 천만원짜리 일"…사표 던지는 간호사들

박정렬 기자
2023.10.30 15:30

[박정렬의 신의료인]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의대 증원 추진 등 관련 대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필수 의료의 '또 다른 축'인 간호사의 근무환경도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병원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간호사를 과로로 내몰고 의사 등 타 직역의 일까지 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부실하기만 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간호사 A씨는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나 오늘 응급사직할 거야"란 제목의 글을 올려 종합병원의 간호사 노동 착취 실태를 고발했다.

자신을 한 달 전 대학병원에서 최근 200~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이직했다고 소개한 A씨는 "대학병원이 힘들어서 종합병원으로 들어왔는데 진짜 간호사라는 직업이 처참하다고 느꼈다"면서 "월 300만~400만원 주면서 거의 1000만원 가까이 의료 인건비를 절감하는 게 우리나라"라고 분개했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가면을 쓴 의료기관 소속 PA 간호사 및 방사선사들이 25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보건의료 근본 과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종 업무 범위 명확화, 무면허 불법 의료 근절,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3.5.25/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씨는 이 병원에서 중환자를 담당하면서 입원 환자 수용, 청소와 폐기물 박스 정리 등의 잡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대학병원에서 이송 요원, 청소부, 간호조무사가 담당하는 일까지 혼자서 처리해야만 했다는 것.

심지어 A씨는 인턴과 당직 의사가 없어 이들이 하는 동맥혈 검사, 드레싱(상처 소독), 흔히 콧줄로 불리는 위관 삽입, T-tube(기관절제관) 교환 등도 책임졌다. X선과 같은 영상 검사나 혈액 검사 처방을 내고 약국이 문을 닫는 주말에는 직접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 약을 조제하기도 했다.

물을 마실 시간도, 화장실 가는 것도 '사치'였다고 A씨는 토로했다. 쉴 새 없이 일하느라 하루 4시간 연장근무를 하는 날도 있었지만 '병원 분위기상' 아무도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의사 대신 처방이나 처치를 하는 것, 폐기물 박스를 정리하다 내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두 간호사의 책임"이라며 "의료사고가 나면 나를 보호해줄 방어책이 아무것도 없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이 24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5.24/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런 '간호사 인력 착취'는 비단 A씨의 일만이 아니다. 대한간호협회(간협)가 지난 5월 18일부터 6월 5일까지 '불법 진료 신고센터'를 통해 간호사에게 내려진 부당한 업무 지시를 수집한 결과 한 달도 안 돼 총 1만4234건이 접수됐다. 신고를 위해 접속자가 폭증해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였다.

세부적으로 검사(검체 채취, 천자)가 9075건으로 가장 많았고 처방 및 기록 8066건, T-tube나 L-tube(콧줄) 등 튜브 관리, 봉합과 초음파 검사 등 치료·처치 및 검사가 2695건이었다. 대리 수술, 수술 수가 입력, 수술 부위 봉합과 같은 불법적인 수술 업무 지시는 1954건, 항암제 조제 등 약물 관리도 593건이나 됐다.

이런 불법 진료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건비 절감으로 수익을 개선하려는 의사의 '욕심'이 깔려 있다는 게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특히, 개인이나 소수의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종합병원의 경우 대학병원보다 처우가 훨씬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다.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2018년과 비교해 2022년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수는 각각 16만5302개→19만7005개, 10만7290개→11만1005개, 4만4814개→4만8057개로 모두 늘었다. 같은 기간 간호사 수는 상급종합병원이 2만904명(4만7623명→6만8527명), 종합병원이 2만2132명(6만5682명→8만7814명), 병원은 1만77명(3만1041명→4만1118명) 증가해 간호사 1인당 병상 수는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간협이 1인당 병상 수를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 대비 종합병원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를 비교한 결과 2018년 각각 1.73배, 5.66배에서 2022년 1.8배와 6.84배로 눈에 띄게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병상 수에 비례해 의사의 임금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의사·한의사·치과의사 등 개원의의 평균 소득은 2021년 기준 2억6900만원으로 7년 전인 2014년(1억7300만원)과 비교해 1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우리나라 전문의 가운데 병·의원 봉직의 임금 소득은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으로 연간 19만5463 달러(한화 약 2억 6,400만원), 개원의는 연간 30만3000 달러(한화 약 4억 1000만원)로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구매력평가 환율이 물가 변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실제 연봉 수준과는 차이가 있지만 세계적으로도 한국 의사의 임금 상승 추세는 뚜렷하게 관찰된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10.12/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간호사 처우에 관한 문제는 올해 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간호사 불법 진료 실태의 원인을 묻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 인력 부족에 따라 간호사들이 의사 역할을 대체한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라며 "연말까지 업무 수행 범위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간협이 불법 진료 행위를 강요한 전국 의료기관 81곳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지 반년이 흘렀는데도 별다른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필수 의료 환경 개선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간협은 "상황에 맞게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해석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면서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해 노동강도를 낮추려면 병원 설립요건을 강화하고, 간호 필요도에 근거해 간호사를 적정하게 배치하는 등 법적·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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