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으면 효과 없고 많으면 비용 부담…"의대 증원 얼마나?" 의료계 촉각

박정렬 기자
2023.11.22 14:29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의대생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심혈관조영실에서 보건복지부 필수의료 의대생 실습지원 사업 관련 심혈관조형실 시술 실습 참관을 하고 있다. 2023.08.03.

의대 정원 확대가 기정사실 되면서 이제 의료계의 '눈'은 의사 수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늘릴지에 쏠리고 있다. 의사단체가 단순 수요 조사를 토대로 한 '비과학적' 의대 정원 확대 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정부가 제시할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아우르는 '적정 의사 수'는 어떻게 정해질지 관심이 쏠린다.

22일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대 입학 정원 수요조사 결과 모든 의과대학이 정원을 늘리기를 희망했다. 당장 내년 모집인 2025학년도 정원은 2151~2847명, 2030학년도에는 최소 2738명, 최대 3953명까지 증원 수요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대 정원은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됐는데 현재보다 거의 2배 더 많이 의대생을 늘리고 싶다고 나선 것이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연도별 희망 증원 수요./자료=보건복지부

최소 수요는 당장 증원이 가능한 규모를, 최대 수요는 대학이 교수나 강의실 등 추가 교육여건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제시한 증원 희망 규모다. 아직은 각 대학의 '희망 사항'일 뿐 정부는 조만간 복지부·교육부·전문가로 구성된 의학교육점검반을 가동해 수요조사 결과의 타당성을 점검한 후 입학 정원을 결정할 방침이다. 입시 일정을 고려할 때 이르면 다음 달, 늦어도 내년 1월 중에는 확정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복지부는 "아직 의대 정원 확정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의협 "비과학적 조사", 보건노조 "지역·공공 안배도"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대한의사협회(의협)를 필두로 의사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의협은 복지부 브리핑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의대 정원 수요조사는 이해 당사자들의 희망 사항만을 담은 졸속·부실·불공정 조사"라면서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 의료계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1.21/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의협이 반발하는 이유는 이번 수요조사가 당사자인 의협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발표된데다 특히 '비과학적'이라는 데 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지역의 정치인과 지자체가 바라는 만큼이 의대 정원의 적정 수치가 되었고, 이후 이어질 형식적인 현장점검은 이러한 정치적 근거를 과학적 근거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다"며 "적정 의대 정원에 대한 분석은 의사 수급과 의료서비스 질에 미치는 영향, 인구구조 변화, 의료기술 발전, 의료제도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전국 시도별 의사회장의 단체인 전국 광역시도 의사 회장협의회도 같은 날 의견문을 내 "의대의 적정 정원에 대한 분석은 반드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의협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직원들에게 원하는 연봉을 써내라고 하면 다들 1억원 이상 쓰지, 누가 3000만~4000만원을 쓰겠나"고 반문하면서 "최대치를 써서 보내야 불이익이 적다는 분위기가 만든 수요조사만으로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비판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보건의료산업노조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보건의료노조에서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2.7%가 의사인력 확충 위한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했으며 공공의대 설립·지역의사제 도입에 각각 77%, 83.4%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2023.11.21/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심지어 시민단체도 의대 정원 확대에는 찬성하지만, 방향성에는 우려를 표명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역 ·필수·공공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의사 인력 규모를 따져 적정 규모를 산출해야 한다"면서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 인력을 확대하기로 한 만큼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대 정원은 최소 10년 동안, 1년에 1000명은 증원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는데 이는 수요조사 결과보다 적은 수준이다.

의대 증원만으론 한계 뚜렷…비급여 진료 등 논의해야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자신의 SNS에 "전체적인 변화 없이는 의대 정원을 적게 늘리면 효과가 없고, 많이 늘리면 국가가 늘어난 의사 수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보건의료 정책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교수는 "1000명씩 10년 동안 의대 정원을 늘리면 총 1만명의 의사가 추가돼 전체 의사 공급이 10% 늘어나는 것인데, 이 정도로는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최근의 제안처럼 3000명이 추가로 늘어 정원이 총 6000명까지 증가하면 올해 태어난 아이가 20만명 선인데 100명 중 3명의 우수 인력을 의료에 계속 투입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늘어난 의사 인력이 필수 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재정이 과연 가능한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는 만큼 의료 인력과 의료비 증가가 누구에 의해 감당될 것인지, 실손 보험이나 비급여 진료 등 필수 의료가 아닌 영역에 대한 서비스를 어떻게 조절할지가 의대 정원보다 시급히 논의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중증 질환에 대해서는 국가가 100% 보장해주고 감기 같은 경증 질환이나 비필수 영역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정 교수는 "지금처럼 의대 정원을 정해놓고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은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며 "단일 정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날 열린 수요조사 브리핑에서 "이번 수요조사는 오랜 기간 누적된 보건의료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여정에서 첫걸음을 뗐다는 의미가 있다"며 "확충된 의사 인력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지역·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과학적·객관적 근거 확보를 위한 방안도 계속 찾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