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약을 제대로 투여하고, 환자에게 처방전을 줄 때 이름·주민등록번호를 모두 확인하는 절차는 모두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지만, 때에 따라 일부 병원에선 '오류'가 날 수 있다. 이런 오류를 사전에 막고,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정부가 보증하는 '의료기관 인증제도'가 도입된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요양병원을 제외하면 인증률은 17%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기관 인증을 '받아도 안 받아도 그만'인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서울 여의도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뉴노멀 의료환경과 인증원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오태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흉부외과 전문의)은 "길어지는 의정 갈등으로 의도치 않게 정상화해가는 것 중 하나가 상급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응급실로의 쏠림 현상이 줄어든 것"이라며 "이제는 2차 의료기관인 중소병원과 전문병원부터 알아보고 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환자가 믿고 가도 되는 병원인지 정부가 보증하는 곳이 바로 의료기관 평가 인증을 받은 병원"이라며 "그런데도 중소병원과 전문병원의 의료기관 평가 인증률은 5%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의료의 질, 환자 안전 수준 모두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2011년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도입했다.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 인증을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의료기관은 현재 '요양병원'이 유일한데, 지난달 말 기준으로 1359곳 중 1355곳(99.7%)이 신청했고, 이 가운데 1256곳(96.8%)이 성공적으로 인증받았다. 상급종합병원 47곳은 100%가 인증 평가를 신청했고, 모두 의료기관 인증을 받았다.
반면 병원의 자율에 따라 인증 신청을 결정하는 의료기관 가운데 종합병원의 인증기관 평가 신청률은 66.4%, 병원은 12.2%, 치과병원은 5%, 한방병원은 3.3%에 불과했다. 게다가 타 평가를 받기 위한 선결 요건으로 활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순수한 목적으로 의료기관 인증을 신청한 의료기관은 급성기병원(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이 4.8%, 치과병원이 4.5%, 한방병원이 1.5%, 정신병원이 10.8%에 불과했다(지난 7월31일 기준).
이처럼 자율 인증 참여율이 저조한 건 상급종합병원은 의무적으로 인증받아야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지만, 중소형의 2차 병원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강제성이 없어, 받아도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게 인증원의 분석이다. 오태윤 원장은 "2011년 의료기관 인증제가 도입된 후 국내 의료기관의 의료 질 관리 문화가 확산하고, 진료 프로세스가 개선된 효과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면서도 "자율 인증 참여율이 저조해 인증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말했다.
이에 인증원은 중소형 의료기관까지 모두 인증 신청에 참여하도록 '인증제 개편 추진단'을 지난 3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관 인증을 받기까지 초기 진입 장벽이 높다는 중소형 병원들의 하소연에 따라 '단계별 인증'을 추가로 제시하고, 인증받은 병원에겐 '인증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당근책'을 담은 인증제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 '환자안전관리사'가 정식 직업으로 인정되면서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환자안전관리사는 병원 내 환자 안전을 관리하는 핵심 인프라 인력으로, 그간 '환자안전전담인력'으로 불렸지만 내년 1월1일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등재되면서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게 됐다.
현재 전국의 환자안전 전담인력은 1600여명으로, 간호사·의사·치과의사·한의사·약사 등이 환자안전관리사가 될 수 있다. 경력 3년 이상의 숙련된 간호사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환자안전관리사는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내 중앙환자안전센터에 보고해야 한다. △의료진이 설명하고 환자에게 동의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수술·수혈·전신마취를 한 경우 △진료기록과 다른 의약품, 다른 용량, 다른 경로로 약을 투여한 경우 △의료기관 내 신체적 폭력이 발생한 경우 등이 그 예다.
이날 서희정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장은 "2021년 환자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3만8201명)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2916명)의 12배에 달한다"며 "내년 1월1일 환자안전관리사가 정식 직업으로 채택되면서 내년부턴 이들을 의무 배치했는지가 의료기관 인증 요건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200병상 이상 병원급에서는 환자안전관리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며 "향후 150병상 이상으로 그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