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막고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 수칙 중 하나가 '운동'이다. 그런데 미세먼지·자외선이 심한 날 야외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거나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채 조깅했다면 암을 막는 게 아닌, 오히려 일으키는 격이 될 수 있다. 면역력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일상 속 '발암물질'을 피하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1971년부터 발암물질을 찾아내 1~4급으로 구분해왔다. 전문가들은 발암물질 가운데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람에게 확실히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된 '1급(Group 1) 발암물질'만큼은 일상에서 멀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친숙한' 발암물질을 알아본다.
자외선은 1급 발암물질로, 피부 노화 가속과 피부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자외선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주름이 깊어지고 기미나 잡티가 생기며, 피부가 거칠어지고 탄력을 잃어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게 된다. 자외선은 DNA를 손상해 피부 세포의 변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로 △흑색종 △기저세포암 △편평세포암 등 다양한 피부암 발생의 위험이 커진다. 특히 흑색종은 치명적일 수 있는 피부암으로, 조기 발견과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자외선으로 인한 모든 피부 손상은 쌓인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자외선을 차단해야 하는 이유다. 자외선이 피부에만 악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연구 결과, 피부에 닿는 자외선이 뇌 기능, 특히 기억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기적인 자외선 노출은 도파민을 과도하게 활성화해 신경 발생과 시냅스 가소성을 악화하고 기억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이동훈 교수는 "자외선에 장기간 노출된 쥐들은 새로운 물체를 기억하거나 미로를 학습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자외선을 차단하려면 SPF(Sun Protection Factor, 자외선 B 차단 지수) 50, PA(Protection grade of UVA, 자외선 A 차단 지수) +++ 이상의 자외선차단제를 2시간마다 다시 바르는 게 좋다.
1급 발암물질엔 알코올(술), 가공육, 적색육, 그을음, 흡연, 햇빛(자외선), 매연, 톱밥 분진, 벤젠, 벤조피렌, 아플라톡신, 니코틴 등이 포함돼 있다. 그중 일상에서 아직도 흔히 먹는 게 가공육·적색육·벤조피렌이다.
벤조피렌은 불에 구운 고기의 탄 부분에 주로 들어있다. 벤조피렌은 정상세포의 돌연변이를 유도하는데, 탄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은 위암 발생 위험이 7배까지 높아진다.
가공육은 공장식 사육 방식으로 길러진 고기에 아질산나트륨 등 식품첨가물로 만든다. 가공육 제조과정에서 고기 특유의 붉은 색을 내기 위한 발색제,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보존제로 쓰이는 아질산나트륨은 동물성 단백질인 아민과 만나면 1급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이 된다. 다만 국가암정보센터는 "가공육은 담배·알코올·석면·비소 등과 마찬가지로 발암물질 부류에 속하나 이들 물질보다 발암 위험률이 현저히 낮다"며 "가공육을 먹되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은 유해 입자 미세먼지도 1급 발암물질로 지정돼 사람의 기대수명을 1.8년 줄인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호흡기를 통해 폐 속 깊이 침투하거나 혈관에 스며들어 체내로 흡수되면서 다양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만성 폐쇄성 폐 질환(COPD)'이다. 기침·가래에서 증상이 시작하다가 심하면 호흡곤란이 발생한다. 미세먼지는 입자가 작아 우리 몸에 들어오면 체외 배출이 힘들어 재채기와 기침 등이 심해질 수 있다. 폐·기관지에 유입되면 해당 유해 요인이 염증을 유발해 호흡기질환이 발생하거나 악화하기 쉽다.
외출할 땐 'KF80' 이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미세먼지를 최대한 걸러낼 수 있다. 귀가 후 양치질하고, 목이 칼칼한 증상이 있는 경우 가글하는 것도 도움 된다. 목 안 점막이 건조해지면 미세먼지가 더 쉽게 달라붙기 때문에 하루 8잔(1.5ℓ) 이상의 물을 마시는 게 좋다.
노원을지대병원 피부과 최재은 교수는 "모낭보다 작은 크기의 미세먼지가 피부로 침투해 쌓이면 거친 주름, 불규칙한 색소침착 등이 발생해 피부 노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출 후에는 자극이 적은 클렌저로 세안하고, 보습제를 챙겨 발라 피부 장벽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머리카락·두피에 달라붙은 미세먼지는 샤워해도 다 닦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외출할 때 모자를 쓰는 게 안전하다.
외출 후 눈이 따갑거나 이물감이 느껴지면 눈을 비비지 않고, 인공눈물을 사용해 눈을 깨끗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눈 세척 시에는 손을 깨끗이 씻고 일회용 인공눈물을 사용한다. 생리식염수를 이용하면 콧속에 남아있는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술은 담배와 함께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지나친 음주는 뇌·심장·소화기·콩팥·호흡기 등 여러 부위에 질환을 일으킨다. 우울·기억상실·학습장애 등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또 과음은 다음 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주취 폭력, 음주운전 등 사회적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
국립암센터의 대국민 음주·흡연 관련 인식도 조사에서 1급 발암물질 인식이 담배가 88.5%이지만 술은 33.6%를 차지했으며 술과 담배가 똑같이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7.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급적 술자리는 피하는 게 좋겠지만 연말연시 술 모임에 빠지기 어렵다면 세계보건기구의 '저위험 음주량'인 남성 40g(소주 4잔이나 맥주 5잔), 여성 20g(소주 2잔이나 맥주 2.5잔)을 넘지 않도록 조절해보자. 그 이상 마시면 '위험 음주자'로 분류된다. 자신의 주량을 알고 넘지 않도록 하며 기저질환이 있거나 알코올에 거부 반응이 있다면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음주 횟수는 주 1회 이하로 하며, 음주 후 3일은 금주하는 게 권고된다.
하루에 담배 한 갑씩 1년 동안 흡연한다면 순한 담배를 기준으로 약 36g의 니코틴·타르 등 유해 물질을 마신다. 이는 제초제, 살충제, 각종 독극물 성분의 유해 물질을 1년에 걸쳐 초코 막대과자 한 봉지 분량을 먹는 셈이다.
담배와 담배 연기 성분에는 제1급 발암물질을 포함해 발암물질 40여 종, 유해 물질 4000여 종이 포함돼 있다. 타르·니코틴 외에도 비소, 벤젠, 산화에틸렌, 염화비닐, 베릴륨, 니켈, 1,3-부타디엔, 크롬,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이 담배에 들어있다.
건강에 가장 해로운 담배 속 물질은 니코틴·타르·일산화탄소다. 살충제·제초제에 쓰이는 니코틴은 사람에게선 담배의 습관성 중독을 일으킨다. 거의 아편 수준의 중독성을 보이기 때문에 약학적으로는 '마약'으로 분류된다. 니코틴에 중독되면 두통, 오심, 구토, 설사, 시력장애, 혈액순환 부전, 심장마비, 경련 등이 나타난다. 타르엔 담배 속 대부분의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담배 연기를 통해 폐로 들어가 혈액에 스며들어 세포·장기에 영향을 주고 잇몸·기관지 표피세포를 파괴하거나 만성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산화탄소는 혈액의 산소운반 능력을 감퇴시켜 저산소증을 일으키고 신진대사에 영향을 준다. 흡연할 때 약한 연탄가스를 맡는 셈이다. 방부제에 쓰이는 나프틸아민, 독극물인 청산가리, 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카드뮴, 살충제 원료인 디디티 등 인체에 유해한 수많은 물질이 담배에 들어있다.
금연을 실행할 때 금단증상에 대처하고 흡연 욕구를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갈증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물을 충분히 마신다. 따뜻한 물 샤워, 가벼운 산책, 운동은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 된다. 인천힘찬종합병원 호흡기내과 장준용 과장은 "금단증상이 심하다면 니코틴 대체제나 부프로피온, 바레니클린 등 금연 약물요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