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안 통하는 우울증 환자들…뇌파 검사했더니 '이것' 달랐다

정심교 기자
2025.02.13 07:00

[정심교의 내몸읽기]
일산백병원 이승환 교수팀, 우울증 환자 367명 연구 결과

이승환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우울증 남성 환자의 뇌파(EEG)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일산백병원

우울증 환자의 30%가량 항우울제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존 치료법은 환자에게 일단 약을 처방한 후, 효과가 없으면 다른 약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시간·돈을 쓰는 데 부담을 겪어왔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국내 의료진이 찾았다.

13일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환 교수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의 뇌파(EEG)를 분석해 뇌 신경망 기능을 측정함으로써 항우울제 반응성을 예측할 수 있는 뇌파 신호의 특징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주의력과 감정 조절이 치료 반응 좌우해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 367명(치료 저항성 98명, 치료 반응 양호 269명)과 건강한 성인 131명의 뇌파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주의력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특정 뇌 네트워크의 연결성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두안구 영역과 두정엽의 연결이 약했다. 이 부위는 ▲섬세한 정서 조절 ▲충동 조절 ▲사회성 ▲주의력 조절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이 연결성이 약하면 외부 자극에 대한 정서 조절의 실패나 사회 기능 저하, 집중력 저하가 발생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또 치료 저항성 환자는 보상 회로 기능도 저하돼 있어 항우울제 복용 후에도 기분 개선 효과가 크지 않았다.

모든 우울증 환자 그룹(치료 저항성 포함)에선 '후대상피질'이 과활성화했다. 후대상피질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역할을 하는 뇌 영역으로, 이 부위의 과도한 활성은 '부정적 사고'를 계속하는 것과 관련 있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내면적 사고에 갇혀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주의력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위(전두안구 영역, 두정엽)의 연결성이 약하고 ▲감정 조절력, 보상 회로 기능이 저하돼 있었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역할을 하는 후대상피질의 활성도가 과도한 특징을 보였다.

뇌파 검사 통한 맞춤형 우울증 치료

이번 연구는 뇌파 검사를 활용해 우울증 환자의 치료 반응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구팀은 향후 뇌파 검사가 표준화된다면 우울증 초기 진단 시 항우울제 반응성이 낮을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미리 선별해 맞춤형 치료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이승환 교수는 뇌파 검사의 상업적 목적을 위해 2019년부터 디지털 멘털헬스테어 회사(비웨이브)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이승환 교수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신약 개발, 임상 시험에서 치료 반응성이 높은 환자를 선별하는 게 쉬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국내외 제약업계의 신약 개발 비용을 줄이고, 임상시험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약물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전기 뇌 자극 치료(TMS)나 인지행동치료(CBT) 등의 대안 치료를 병행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최적의 치료법을 신속하게 찾아낼 전망이다.

이승환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우울증 치료가 획일적으로 진행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별 맞춤 치료 전략을 수립할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뇌파 분석을 통해 조기에 치료 저항성을 예측하면, 불필요한 시행착오 없이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어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심리 의학(Psychological Medicine)' 최신 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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