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들은 치료제를 매일 복용하면서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편입니다. 장기지속형 HIV 주사요법은 국내 HIV 감염인에서 감염 사실 노출 불안을 낮추고 높은 치료 순응도와 치료 만족도를 제공하는 치료 선택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교수가 17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GSK 보카브리아&레캄비스 주사요법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4월부터 국내에서 최초 장기지속형 HIV 주사제인 보카브리아(성분명 카보테그라비르, 제조사 GSK)&레캄비스(성분명 릴피비린, 존슨앤드존슨)가 급여 적용이 됨과 동시에 출시됐다. 이 주사제는 처음 2개월 동안은 매달 1회씩 주사하고 이후 유지요법으로 2개월마다 1회씩 투여하면 된다. 이에 매일 경구 치료제를 정해진 시간에 복용해야 했던 HIV 감염인들이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HIV는 인간의 몸 안에 살면서 면역기능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감염 후 질병이 진행돼 면역체계가 손상되면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을 유발할 수 있다. 보균자의 타액이 섞인 물을 마셔도 감염이 되진 않지만 보균자의 감염된 체액과 직접 접촉하면 전염될 수 있다. 하지만 HIV 감염인이 항바이러스제를 지속 복용하면 바이러스가 억제돼 전파되지 않는다.
최 교수는 "HIV 감염인이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잘 복용해 6개월 이상 혈중 바이러스 검출불가 상태를 유지하면 콘돔 없는 성관계로도 HIV를 전파하지 않는다"며 "HIV는 다양한 치료제 발전으로 바이러스가 효과적으로 억제됨에 따라 HIV 질환은 이미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됐고, 감염인의 기대수명은 비감염인과 유사한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HIV 감염인을 향한 부정적 인식과 사회적 낙인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이 만연하다"며 "이는 많은 감염인들이 적극적인 조기 치료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임은 물론 지속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 경구제의 발전에도 매일 복용해야 하는 경구제의 특성상 복약 순응도와 삶의 질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여전하다"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HIV 감염인은 원치 않은 감염 사실의 노출 방지를 위해 감염 사실과 HIV 치료제를 숨기거나 심지어는 치료제 복용을 거르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 HIV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이 지난해 HIV 감염인 16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감염인들의 73%가 치료제 복용 시 어려움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주변 사람들이 감염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움)을 꼽았다. 53%는 매일 정시 복용하거나 공복에 복용해야 하는 등 복용 방법의 불편함을, 51%는 HIV 치료제를 복용할 때마다 감염 사실이 상기돼 우울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점을 치료 시 어려운 점이라고 답했다.
이에 최근 출시된 장기지속형 HIV 주사제가 HIV 감염인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 설명이다. 치료제 가격은 2개월 기준 경구 치료제와 주사요법이 같아 환자 부담도 크지 않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연숙 충남대학교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보카브리아&레캄비스 주사요법으로 치료받은 HIV 감염인의 90%에서 기존 경구제보다 장기지속형 HIV 주사제 치료를 선호했다"며 "주사요법 3b상 임상연구에서 한국인 감염인 16명을 포함한 아시아 HIV 감염인(41명) 참가자의 자료 분석에서도 치료 96주차에 참가자의 83%가 바이러스 억제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주사요법에 급여가 적용된 만큼 감염인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 HIV 주사제로 치료 선택권을 변경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주사요법은 2022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바이러스학적으로 억제돼 있고 △치료 실패 이력이 없으며 △카보테그라비르 또는 릴피비린에 알려진 또는 의심되는 내성이 없는 성인 환자의 HIV-1 감염 치료요법으로 승인됐다. 지난 4월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돼 임상현장에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