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잃기 두려워" 1년에 3천만원 치매신약, 2천명이 맞았다

박정렬 기자
2025.11.27 15:37

#. 70대 남성 김모씨는 1년 넘게 물건을 둔 곳이나 사람 이름 등을 잊는 등 기억력 감퇴 증상을 겪었다. 어느 날, 형이 치매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났고 그 길로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다행히 기억력만 줄어든 경도인지장애였다. 뇌 MRI 검사에서도 치매 중증도와 비례하는 해마 위축은 경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가족력이 있는 김씨는 치매에 대한 우려가 컸다. 뇌 PET 검사에서 '독성 물질'인 아밀로이드 축적이 관찰돼 안심할 수만 없었다. 걱정하는 그에게 주치의인 김여진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를 소개했다. 김씨는 치료를 결정했고, 지난달부터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레켐비를 정맥 투여받고 있다.

김여진 교수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치매로 발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크지만 지금까지는 특별한 치료제가 없어 증상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쳤다"며 "레켐비 출시로 치매 원인(아밀로이드 배타) 공략이 가능해지면서 의료진도 자신 있게 치료를 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초고령화 사회, '기억을 잃는 병' 치매에 대항하는 레켐비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환영받고 있다. 한국인은 부작용에 대한 위험도 그렇게 크지 않아 사용 시 이점이 크다고 여겨진다. 글로벌 빅파마의 잇따른 임상 시험 실패에도 불구하고 치매 정복을 향한 산업계·학계의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치매약 '레켐비' 한국인 부작용 위험 낮아/그래픽=임종철

27일 대한치매학회와 한국에자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정식 출시된 레켐비는 현재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전국 80여개 병원으로 처방 범위가 확대됐다. 비급여라 1년 치료 시 검사 등 총비용이 3000만원 안팎에 달하지만 출시 1년 만에 치료 인원은 2000명을 넘어섰다.

레켐비는 신경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란 물질이 뇌에 쌓이는 것을 막는다. 증상 개선이 아닌 원인을 제거해 진행 속도를 늦추는 '근본 치료제'로 평가받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레켐비 투여군은 가짜 약(위약) 투여군보다 18개월간 인지 능력 감소가 27%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레켐비에 따른 주요 부작용은 뇌부종, 미세 뇌출혈 등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이다. 임상시험 결과 각각 발생률이 17.3%, 12.6%로 낮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은 부작용 위험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한치매학회가 이달 초 환자 실사용 데이터(RWD) 구축 연구, 일명 '조이 알츠(JOY-ALZ)'를 통해 실제 처방 환자 423명을 중간 분석한 결과 뇌부종 발생률은 2.1%(9명), 미세 뇌출혈은 5.4%(23명)로 임상시험 평균치보다 크게 낮았다. 미세 뇌출혈은 전원이 무증상이었고 뇌부종 역시 무증상이 5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조이 알츠의 연구 책임자인 김건하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RWD를 통해 값비싼 치매약을 언제, 어떤 환자에게 쓰는 게 좋고 누가 조심해야 하는지 등을 확인하려 한다"며 "효과 평가 등을 포함한 최종 결과는 내년 상반기쯤 발표 예정"이라 말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치매 치료제가 효과를 입증하며 임상 사용이 확대되지만 아직 '치매 완전 정복'은 요원하다. 아밀로이드를 타깃한 신약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는 단일 물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질환이란 사실이 환기됐지만 신경 염증, 타우 단백질 등 비(非) 아밀로이드 타깃 신약은 아직 성공 사례가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까지도 치매 신약에 대한 글로벌 빅파마의 임상 실패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비만약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티드'(경구용)의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 효과를 검토한 두 건의 임상 3상 결과 기준치인 '인지저하 속도 최소 20% 감소'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타우 단백질을 타깃하는 '포스디네맙'의 임상 2상 결과 알츠하이머 치매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며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

김여진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교수가 27일 아밀로이드 뇌 PET 영상을 보며 알츠하이머 치매 기전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동성심병원

그러나 치매 신약 개발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고령화에 따라 의료 현장의 요구가 크고 수요도 보장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특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강동성심병원 김여진 교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아밀로이드가 쌓이고 → 신경 염증 반응이 촉진되며 → 타우 단백질이 축적돼 → 결국 뇌세포(뉴런)가 죽고 뇌가 위축되며 발생한다"라며 "이 과정의 어느 곳을 차단하느냐가 신약 개발 전략"이라 설명했다. 이어 "이미 치매가 발병·악화한 환자는 아밀로이드를 제거해도 이후 과정, 즉 신경 염증이나 타우 단백질을 조절해야 인지 기능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의료적 요구도가 높기 때문에 관련 신약 개발도 계속될 것"이라 설명했다.

정용 대한치매학회장(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과거 불치병으로 여겨진 암도 신약 개발 등으로 이제 70%가량은 치료할 수 있게 됐다"며 "치매 역시 레켐비 등이 치료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인허가 등의 '기준'을 제시하며 제약·바이오 산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동시 공략하거나 혈액-뇌 장벽(BBB) 투과도를 높이는 등 다양한 신약이 연구되고 있다"며 "비용은 줄고 사용성은 개선되는 방향으로 치매 치료제도 진화하게 될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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