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최대 25% 줄 듯…국내외 제약사·유통사도 약가 개편 '영향권'

박정렬 기자
2025.11.30 17:09

보건복지부 '약가 개편안' 발표

신약 접근성을 확대하고 복제약 약가를 낮추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선방안(이하 약가 개편안)은 환자, 국내외 제약사, 유통사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업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8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2012년 일괄 인하했던 약 중 오리지널(원조) 약가 대비 45%~53.55%인 복제약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를 내년부터 낮춰 최종 40%대로 인하는 내용의 약가 개편안을 보고했다. 절감되는 재정은 연간 2500억원, 4년간 약 1조원으로 이를 혁신 제약기업 육성과 필수의약품 안정공급 등에 재투자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복지부는 희귀·중증질환 중심의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해 △약가 유연계약제(과거 이중약가제로 불림) 도입 △희귀질환 급여 100일 이내로 단축 △신약 경제성 평가에 쓰는 ICER(점증적 비용효과비) 임계값(급여 허가 상한액) 상향 △적응증별 약가제 도입 등을 검토·시행하기로 했다.

환자는 부담 감소…유통사는 반품 우려

약가 개편이 적용되는 복제약은 대부분 전문의약품으로 이 가격이 내려가면 자연스레 환자가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 가격도 떨어진다. 질환 등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환자 본인 부담금이 약가 인하 수준인 최대 25%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약사는 감기약·진통제·소화제 등이 유명한 곳이라도 실상 매출은 전문의약품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인 제약사의 전문 의약품은 200~300개로, 이 중 복제약 비중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신약·일반의약품·화장품·건강기능식품 등의 비중이 높으면 그나마 충격이 덜하지만 이런 국내 제약사가 거의 없다. 약가 개편안이 국내 제약산업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병·의원과 약국으로 약품을 공급하는 유통사도 '복제약 영향권'이다. 약가가 내려가면 병·의원·약국은 고가에 매입한 재고를 낮은 가격에 판매하지 않고 대량 반품할 가능성이 크다. 보통 유통사가 먼저 환불한 후 제약사에 약가 차액·반품 보상을 청구하는데, 매출 감소 등을 이유로 제약사가 정산을 지연하거나 거부할 경우 손실은 고스란히 유통사에 전가된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지금도 발생하는 일이다. 약가 차액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에 달한다"며 "선지급 비용을 제외해도 반품 과정에 회수 인력 투입, 물류 운송·재고 처리 비용 등 행정·재무 부담도 클 것"이라 걱정했다.

신약 접근성 높아질 듯 '쏠림 현상' 우려도

신약 접근성 확대는 중증·희귀난치 질환 환자에 희소식이다. 복제약 가격 조정을 통해 재정 여력을 확보, 신약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정부 약가 개편안의 주요 골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복지부 약가 개편안 발표 후 "그간 제기돼 온 환자의 신약 접근성 지연 등을 개선했단 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약가 개편안의 신약 파트 상당 부분이 '공급 확대'에 맞춰져 글로벌 제약사에 당장 유리하게 비치기도 한다. 더 많은 신약을 들여와 판매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도 결국 복제약에서 신약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정부 지원 방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의 가치를 인정받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기업의 도전 의식이 고취되고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공개되는 표시가격과 실제 적용 약가를 다르게 설정하는 '약가 유연계약제'는 신약 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약가를 최저 수준으로 해달라는 '최혜국 대우'를 언급하기 전에도 중국이 한국 약가를 참조하다 보니 신약 국내 출시를 뒷순위로 미루거나 철회하는 '코리아 패싱'이 드물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약가를 낮게 책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연계약제는 환자에 혜택을 주면서 신약 도입을 촉진할 수 있어 '일석이조'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약가 인하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워싱턴DC 로이터=뉴스1) 류정민 특파원

ICER 임계값 상향도 의미가 있다. 신약이 건보 혜택을 받으려면 효과 대비 가격이 적당한지 따져보는데, 이때 '1년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드는 금액'을 평가한 게 ICER다. 우리나라는 이 상한이 5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고가의 신약은 건보 등재에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앞서 유방암 신약 '엔허투' 등 5개 약이 임계값을 넘는데도 건보 적용을 받았고, 복지부가 공식적으로 '정책연구 후 2027년 적용'이란 로드맵을 제시하며 전기를 맞았다. 반면에 ICER 임계값 목표 수치가 없어 당장 신약 도입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항암제나 희귀난치성 질환과 달리 '만성질환 신약'은 도입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 만성질환 약은 종류가 많고 효과가 비슷해서 신약이 나와도 대게 'ICER 트랙' 거치지 않고 '가중평균가'로 건보 급여를 신청한다. 시장 점유율을 고려해 전체 평균을 내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약가를 협상한다. 약가 개편으로 복제약 가격이 낮아지면 가중평균가가 떨어지고, 기업이 신약을 만들거나 들여올 유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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