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산 주사기를 7월에야 받을 수 있다네요."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안과의원. 물품 주문서를 보던 임찬영 원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난 7일 구매한 일회용 주사기의 예상 발송일이 3개월 뒤인 오는 7월로 지연됐단 알림 때문이다. 임 원장은 "가장 많이 쓰는 3cc 용량 주사기가 2주분 남짓 남았다"며 "백내장을 포함해 한 달 100~200건의 수술을 하는데 백내장 수술 한 건당 3cc 주사기를 10개 정도 쓴다. 물량 확보가 시급함에도 주사기 주문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오후 찾은 경기 성남시의 한 정형외과의원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가득 차 있던 창고는 거의 빈 상태로, 주요 물품은 일주일분만 남아있었다. 창고 안을 들여다보던 최성욱 원장은 "주사기·수액 세트·수술용 장갑 등 모두 일주일 치 정도 물량"이라며 "새벽마다 재고를 확인하지만 대부분 품절"이라고 전했다.
중동사태로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평소 의료 용품 재고가 많지 않은 동네 병·의원은 제품 수급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가 주사기 생산량을 늘리는 한편, 사재기 근절을 위해 유통 현장 단속을 강화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재고가 부족하단 반응이 나온다.
특히 주요 품목 가격대가 급격히 뛰며 부담이 가중된 모양새다. 한 온라인몰에선 수술용 장갑 한 상자(50켤레) 가격이 지난 1월 2만7000원에서 최근 3만5000~3만8000원으로 30~40%가량 올랐다. 일회용 주사기는 3cc 기준 한 상자(100개)당 5000원대 내외(개당 50원 내외)에서 8900원(개당 100원 내외)까지 뛰었지만 이마저도 재고를 찾기 힘들다. 사태 이전 5000원대에서 거래되던 5cc 용량 주사기도 최근엔 1만원대로 올랐다. 구매 후 반품 가능했던 제품들은 '반품 불가' 상태로 판매 중이었다.
경기 의정부시의 한 소아청소년병원 관계자는 "소모품 거래가가 이번 달에만 20% 올랐고 5월부터 또 인상한다고 들었다"며 "기존 가격 대비 40~50%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약물 시럽 통을 공급해주는 또 다른 업체는 이미 가격 인상과 함께 하루 구매량도 제한한 상태"라며 "단가 인상 자체만으로도 병원 운영이 빠듯해졌다"고 전했다.
향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현장 불안감은 확대되는 분위기다. 화순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아직은 지장이 없지만 5월 이후부턴 잘 모르겠다"며 "멸균 장갑과 약물 투약용 지퍼백 등의 공급이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주대병원 관계자는 "지금은 공급에 차질이 없지만 향후 예측이 어려운 만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 서귀포의료원의 경우 주사기가 일주일분밖에 남지 않아 타 의료원으로부터 일부 물량을 공급받으며 급한 불을 끈 상태다. 한 번에 대량 구매가 어려워져 기존엔 한 달 단위로 받던 물품을 이달분부턴 2~3회씩 나눠 납품받고 있다. 의료원 관계자는 "물량을 2~3주마다 쪼개서 받다 보니 물량 확보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황"이라며 "단가가 20% 오른 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생산량 자체는 충분하단 입장이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주사기 생산량은 하루 400만개 이상으로 최근 일주일간 일일 평균 생산량은 전년 대비 14%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7주간 매주 50만개씩 주사기를 추가 생산, 혈액투석·분만·소아청소년 의료기관 등에 우선 공급할 계획이다.
다만 사태 장기화에 따른 현장 불안 심리와 기관별 배분 문제 등이 맞물려 있는 만큼 종합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단 의견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우선 공급될)투석·분만 등 기관 외에도 (주사기 등)확보에서 소외되는 곳은 없어야 한다"며 "수급 불균형이 생기지 않도록 세밀한 공급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 의료제품을 납품하는 김모 대표는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가격 인상 공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김 대표는 "일회용 주사기, 수액 포장재, 의료용 튜브, 장갑, 감염 보호복까지 다양한 의료제품이 중동전쟁의 영향권 안에 있다"며 "코로나19 당시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그가 머니투데이에 공유한 단가 인상 공문은 4월 한 달에만 8개 업체 이상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업체들은 중동전쟁에 따른 환율 인상·원자재 비용 증가를 가격 인상의 공통 이유로 지목한다. 탈지면, 일회용 가운, 석고 신발 등을 제조하는 A사는 지난 13일부터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전국 중대형 병원에 일회용 식염수 주사기 납품하는 B사는 다음 달 1일부터 기존 단가 대비 가격을 30%나 한꺼번에 인상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한 달새 2회 인상을 통보한 곳도 여러 곳이다. 수액백, 알코올 솜 등을 만드는 C사는 3월 말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5%대로 제품 단가를 인상한 데 이어 다음 달부터 추가로 전 제품의 공급단가를 평균 약 10% 올린다고 안내했다. 기존 인상 수준으로는 원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감염 관리에 필수적인 보호복, 일회용 장갑을 제조 판매하는 D사도 이번 달 1일 발주분부터 가격을 10% 일괄 인상했는데 최근에 또 5월 1일부로 가격을 추가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원자재 인상 수준은 가히 '역대급'이다. 머니투데이가 제조업체로부터 입수한 원재료 인상률에 따르면 중동전쟁 이전인 2월 말 대비 4월 20일 현재 인상률은 △폴리프로필렌(PP) 46%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ABS) 36% △폴리염화비닐(PVC) 27% △포장지 22%에 달한다.
원유 정제 과정에 나프타가 나오고, 이를 가공해 PP, ABS, PVC,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에틸렌(PE) 등 의료제품의 '재료'를 만든다. 중동전쟁으로 원유 수입이 막히면서 뒷부분의 부산물까지 차례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다음 달이면 나프타를 공급하는 국내 정유 공장 가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며 "아직은 평시 수준으로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5월이면 진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우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원자재 중 하나만 빠져도 생산이 중단되는데, 부족한 원자재를 대체하려 해도 허가까지 수개월이 걸려 즉시 교체가 어렵다"며 "중동이 아닌 중국·러시아 등에서 물량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지만 수요가 몰리면서 최근 중국의 PVC 단가가 지난해 동기 대비 15~16% 오르는 등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덧붙였다.
아직 제조현장에서는 유통 단계의 매점매석 단속이나 의료제품에 나프타 우선 공급 등 정부 가격 통제 정책이 체감되진 않은 모습이다. 주문량은 여전히 평시 수준을 웃돌고 원자재 가격은 이미 수 십% 급증한 상황에서 지금도 주 단위로 상승하고 있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공급할 수 있는 원자재 물량을 기간별로 정리해 전달해주면 좋겠다"며 "생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유통업체나 의료기관의 불안도 줄여 '사재기 현상'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