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는 약, 배송 관리는 부실?…"의약품 유통 고도화 필요"

박미주 기자
2026.06.11 15:09

신선식품, 음식배달 등 배송 실시간 추적 시대…의약품 유통 정보는 여전히 제한적
재고·배송 흐름 파악에 한계…품절·반품 대응 지연으로 약국 현장 부담
미국·유럽 등 선진국, 의약품 공급망 추적 강화…디지털 기반 배송·재고관리 필요성 확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들은 신선식품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생산지와 유통 경로, 배송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출고부터 도착까지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콜드체인(냉장유통) 시스템도 식품 배송의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먹거리의 안전성과 신선도를 확인하려는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 역시 물류 추적과 온도 관리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반면 의약품 유통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약국과 약사는 주문한 의약품이 어떤 경로로 도착했는지, 운송 과정에서 적정 조건이 유지됐는지 유통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의약품을 공급한 제약사와 약을 복용하는 환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의약품의 유통 투명성과 품질 관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의약품 유통은 정부 허가를 받은 의약품 도매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유통 정보의 단절이다. 제약사나 약국 입장에서는 제품이 유통업체로 넘어간 이후 어느 창고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특정 품목의 재고가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품절이나 수급 불안이 발생했을 때 이런 정보 공백은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품 과정도 마찬가지다. 약국이 불량 의약품이나 유효기간 임박 제품의 반품을 신청하더라도, 다단계 유통 구조에서는 회수·처리 경로와 정산 시점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시기 감기약과 해열제 등 일부 필수 의약품의 수급 불안도 이 같은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약국은 거래 유통업체로부터 '재고가 없다'는 답변을 받을 경우 실제 물량이 부족한 것인지, 특정 유통 단계에 재고가 묶여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유통 정보의 비대칭은 거래 현장의 불합리한 관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수급이 불안정한 품목일수록 정보와 공급권을 가진 유통업체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어, 투명한 유통과 재고 관리를 위한 기준과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의약품 유통업체는 3500여개에 달할 만큼 시장이 파편돼 있지만, 배송 전 과정을 추적·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개별 업체의 설비 투자와 운영 역량에 따라 의약품 유통 품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의약품 유통에도 디지털 기반의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선식품 배송에서는 이미 차량 위치와 배송 경로는 물론, 적정 온도 유지 여부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냉장 배송 과정에서 설정 온도를 벗어날 경우 배송 기사나 관리자가 즉시 알림을 받고 대응하는 방식이다. 의약품 역시 품질과 안전이 중요한 제품인 만큼, 배송 전 과정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바이오의약품이나 주사제처럼 온도 변화에 민감한 제품은 콜드체인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생물학적 제제는 보관·운송 조건이 제품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단순히 창고와 차량을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온도 이력과 배송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도매 유통망을 일정 기준 이상으로 정비하고, 디지털 기반의 재고·배송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공급망 투명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대웅제약은 '블록형 거점 도매' 모델을 제시하며 유통 구조 개선을 추진한다. 이 모델은 거점 도매를 중심으로 공급망을 정비하고, 배송추적시스템(TMS)과 수요예측 기반 재고관리 시스템(AI DCM)을 활용해 유통 관리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배송추적시스템은 의약품이 어느 차량에 실렸는지, 어떤 경로로 이동 중인지, 배송 지연이나 이상 상황은 없는지 확인하는 물류 관리 체계다. 수요예측 기반 재고관리 시스템(AI DCM)은 품목별 주문·판매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어느 지역과 거래처에 재고가 얼마나 필요한지 예측하고, 품절이나 과잉 재고를 줄이는 데 활용된다. 단순히 의약품을 배송하는 데서 나아가 재고와 운송 정보를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하겠다는 방향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유통 구조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정착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의약품 공급망 추적 체계를 강화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투명한 의약품 유통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온 만큼 장기적으로는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한 약사는 "약국 현장에서는 특정 품목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 특정 의약품 품절 상황에서 환자 응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의약품도 재고와 배송 흐름을 보다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진다면 환자 불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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