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인 2024년 7월29일 밤 11시22분쯤,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정문 앞에서 김모씨(당시 43세)가 같은 아파트 주민 백모씨(37)가 휘두른 일본도에 맞아 숨졌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9세·3세 두 아들을 둔 가장이었던 김씨는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백씨는 김씨가 자신을 미행하는 중국 스파이라는 망상에 빠져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에서 백씨 측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백씨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백씨는 2021년 다니던 회사에서 상사와 갈등을 겪다 퇴사했다. 이후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는 사업 전망을 분석할 목적으로 정치·경제 기사를 섭렵하던 중 2023년 10월쯤부터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며 자신이 이를 막아야 한다'는 망상에 빠지게 됐다.
백씨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주 마주치던 김씨가 자신을 미행·감시하는 중국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을 결심, 이듬해 1월 날 길이 약 75㎝, 전체 길이 약 102㎝의 일본도를 사들였다. 그는 장검 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장식용'으로 허위 신고도 했으며, 범행 연습용 목검까지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 골프 가방에 일본도를 숨긴 채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던 백씨는 때마침 담배를 피우러 나온 김씨와 마주치자 망설임 없이 검을 꺼내 휘둘렀다. 김씨는 얼굴·어깨 등에 자상을 입고 5m 떨어진 경비초소로 도망쳤지만 금세 뒤쫓아와 칼을 휘두르는 백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비원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이 5분 만에 출동했으나 김씨는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다. 현장에서 도주한 백씨는 범행 1시간여 만에 자택에서 검거됐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방 안에 앉아 있다가 별다른 저항 없이 체포됐다. 범행 당시 술이나 마약을 복용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공개된 아파트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김씨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백씨가 거울을 보며 태연히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모습이 담겨 충격을 안겼다. 그의 한 손엔 범행 충격으로 휘어진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백씨는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거나 김씨가 자신을 감시하는 스파이라고 주장했다. 법정에선 정치인, 기업 등을 언급하면서 "3년간 언론을 동원한 협박과 불법 사찰, 신변 위협을 당했다. 일본도 소지와 살인 등 모든 혐의는 정당방위"라는 주장도 펼쳤다.
애초 심신미약을 부인하던 백씨는 재판 과정에서 '범행 당시 망상장애 상태였다'는 의사 소견을 받자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나 검찰은 "백씨가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고 망상이 범행동기로 작용했을 뿐 행위 내용과 결과, 그에 따른 책임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독자들의 PICK!
1심 재판부는 백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이에 검찰과 백씨 모두 항소했지만 2심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람을 살해했을 때 어떤 책임을 지는지 판단 못 할 정도의 심신미약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범행 중대성에 비춰봤을 때 심신미약이 인정돼도 형 감경 사유까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가족의 사형 요구가 절대 무리하거나 과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모든 살인 범죄에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항소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대법원이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유족 측은 수사단계에서부터 백씨 신상 공개를 촉구했으나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과 검찰은 백씨의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신상 정보를 공개했을 때 범죄 예방 효과가 작고, 피의자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해 피해자 유족에 대한 2차 가해가 있을 수 있다는 취지로 신상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한편, 백씨가 검찰에 송치된 후 인터넷에 백씨 범행을 두둔하는 취지 댓글을 20여 차례 달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백씨 부친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과 백씨 부친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다음 달 2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