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온 뇌졸중 환자, 빨리 진단해도 수가 공짜" 신경과 의사들, 작심비판

정심교 기자
2026.07.22 17:50

대한신경과학회, '세계 뇌의 날' 기자간담회 개최
"치매·파킨슨병 등 진료 공백, 국가가 개선해야"

22일 대한신경과학회가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서대원 이사장(왼쪽 2번째,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초고령사회에서 뇌질환은 일부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함께 해결해야 할 핵심 보건의료 과제"라며 "치료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치료 접근성과 필수의료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우리나라는 2024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에 접어들면서 중증·응급 뇌질환 환자가 크게 늘었다. 이런데도 글로벌 제약사들의 '코리아 패싱'으로 국내 환자들이 신약을 접할 기회가 없고, 응급실에서 신경과 전문의가 뇌졸중을 진단해도 아무런 보상(수가)이 없어 뇌질환 진료 공백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22일 대한신경과학회가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한 '2026 세계 뇌의 날(World Brain Day)'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권도영 대한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 홍보이사(고려대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파킨슨병 증상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필수 의약품들이 상용화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런 약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며 "국내 파킨슨병 환자들의 치료 선택지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파킨슨병은 뇌 속 도파민이 부족해 발생하는 진행성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뇌 신경질환이다. 현재로는 완치법이 없지만, 뇌에 부족한 도파민을 약물로 공급하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의 약물요법에 의존하면 약효가 금방 사라지는 '약효 소진' 현상, 몸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이상운동증' 등 심각한 운동 합병증이 발생한다는 것.

그는 "최적의 결과와 예후를 얻으려면 파킨슨병 환자마다 치료 전략이 달라야 하며, 제형과 투여경로도 다양화해야 한다"며 "약물 흡수 경로를 다양화(흡입형, 패치형, 혀 밑 투여형, 주사형 등)한 맞춤형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이미 효과·안전성이 검증돼 널리 쓰이는 다양한 경로의 투약 방식이 환자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표준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러한 선택지가 턱없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약물은 국내에는 도입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는 "우리나라는 보수적 저약가제도, 복잡한 급여평가, 가격통제 정책, 글로벌 약가 정책, 동일 성분제형의 기술가치 인정 부족 등으로 인해 제약사가 국내 출시를 포기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은 믿고 거른다는 '코리아 패싱' 현상으로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이날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는 뇌졸중 진료 공백의 원인으로 뇌졸중 센터와 뇌졸중 전문의 부족, 뇌졸중 진료 수가의 부재 등을 꼽았다. /사진=정심교 기자

뇌졸중 같은 응급질환에 대한 급성기 치료체계도 크게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을 포함하는 필수중증응급질환"이라며 "특히 뇌경색은 혈관이 막힌 뒤 1분마다 뇌세포 200만 개가 손상당해, 얼마나 빨리 진단·치료하느냐가 환자의 생존과 후유장애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역별 뇌졸중센터와 신경과 전문의 부족, 응급실과 배후진료과 간 소통 문제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하거나 전원이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응급실에 병상이 있더라도 뇌졸중을 치료할 신경과 전문의가 부족하면 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응급실에서 신경과 의사가 뇌졸중을 진단하더라도 진단 수가가 응급의학과에만 보상될 뿐, 신경과에 주어지는 진단 수가는 '0원'이라는 것도 그는 지적했다. 김 홍보이사는 "예컨대 뇌졸중 의심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고, 응급실에서 뇌졸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신경과 의사를 긴급 호출할 경우 신경과 의사가 뇌졸중을 진단하더라도 진단 수가는 모두 응급의학과로 책정된다"며 "배후진료 보는 신경과에 대한 보상(수가)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한뇌졸중학회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심으로 응급실 신경계 전담의를 배치하고 별도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경계 전문의가 응급실에서 초기 진단하고, 치료 여부를 판단하고, 119 또는 다른 의료기관과 실시간 소통하면 병원 선정과 전원에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학회는 뇌졸중 예방부터 급성기 치료, 재활과 장기 관리까지 연결되는 국가 단위 치료체계가 필요하다며, 응급실 미수용과 지역 간 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학회는 △치매 등 신경계 질환의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성 향상 △뇌전증 필수 응급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체계 구축 △군발두통 재택 고유량 산소치료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지역사회 기반 재택의료 및 통합 돌봄 확대 등도 제언했다.

이날 대한신경과학회는 해외에서 필수의약품을 어떻게 보호하는지에 대한 시스템을 모범 사례로 들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 학회 서대원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초고령사회에서 뇌질환은 일부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함께 해결해야 할 핵심 보건의료 과제"라며 "치료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치료 접근성과 필수의료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신경과학회는 앞으로도 정부와 의료계, 환자단체와 협력하여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을 지속해서 제안하고, 국민 누구나 적절한 시기에 표준 신경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세계 뇌의 날'은 매년 7월 22일로, 세계신경과학연맹(WFN)이 뇌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정했다. 올해 '세계 뇌의 날' 주제는 '모두가 누리는 뇌 건강(Brain Health and Access for All)'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거주 지역이나 사회·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적절한 신경의료와 치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동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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