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복제약(제네릭)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해외에서 특허가 먼저 풀린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 후발약이 출시된 데 이어 세마글루타이드와 티르제파타이드를 겨냥한 선점 경쟁도 시작됐다. 국내 제약사들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삭센다 복제약을 직접 개발하거나 해외 제품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삭센다 복제약의 허가와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테바는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미국 최초의 삭센다 복제약을 허가받아 출시했고, 인도 바이오콘도 올해 2월 미국 허가를 획득했다. 영국에서도 바이오콘과 젠티바 등이 리라글루타이드 후발약 허가를 확보한 상태다.
리라글루타이드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위고비'와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의 '마운자로'보다 앞서 출시된 GLP-1 계열 치료제다. 하루 한 번 투여해야 하고 체중감량 효과도 최신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낮지만 특허 만료로 저렴한 후발약의 시장 진입이 가능해졌다. 고가 치료비가 GLP-1 비만치료제의 접근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돼 온 만큼 복제약 출시가 새로운 수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글로벌 GLP-1 후발약 경쟁은 특허가 만료된 삭센다 시장을 선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 리라글루타이드 시장에서는 이미 가격 경쟁이 시작된 가운데 세마글루타이드와 티르제파타이드 시장에서는 특허 만료 이후를 겨냥한 사전 허가 경쟁이 전개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세마글루타이드의 핵심 물질특허가 먼저 만료된 캐나다와 인도, 브라질 등에서는 관련 후발제품의 허가와 출시가 시작됐다. 캐나다 아포텍스가 신청한 세마글루타이드 주사제는 미국에서도 기술적 심사를 마치고 특허 만료를 기다리는 잠정승인을 받은 상태다.
특허 만료까지 시간이 남은 티르제파타이드 역시 선점 경쟁의 대상이 됐다. 산도즈와 중국 하이바이오는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를 겨냥한 티르제파타이드 주사제의 미국 허가를 신청했다. 특허 만료와 동시에 제품을 출시하거나 특허소송을 통해 출시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에서 최초 제네릭 신청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180일 독점판매권도 조기 개발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규제당국도 향후 후발약 출시에 대비해 개발 기준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세마글루타이드와 리라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의 주사형 펩타이드 의약품에 대한 제품별 제네릭 개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공개했다.
오리지널과 후발약의 구조·생물학적 활성 비교부터 불순물 관리와 생산 배치 시험까지 허가에 필요한 요건을 구체화한 것이 골자다. 향후 특허 만료를 겨냥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개발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국내 제약사 대응은 특허가 먼저 풀린 리라글루타이드에 집중돼 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특허 만료까지 시간이 남은 데다 펩타이드 합성과 불순물 관리, 무균 주사제 생산, 펜 장비(디바이스) 확보 등 기술적 진입장벽도 높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업체들은 두 품목의 복제약보다 효능을 높인 차세대 신약이나 장기지속형 주사제, 경구제·패치제 등 차별화된 제품 개발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국내 삭센다 복제약 경쟁은 직접 개발과 해외 제품 도입의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삭센다의 국내 물질특허가 지난해 11월 만료된 가운데 휴온스와 건일제약 관계사들은 직접 개발에 나섰고 한독은 해외 제품을 도입했다.
휴온스는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삭센다 복제약 후보물질 'HUC2-676'의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오리지널 제품과 약동학적 특성 및 안전성을 비교해 동등성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유전자재조합이 아닌 합성 펩타이드 기술을 적용해 생산 효율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건일제약은 관계사인 펜믹스와 건일바이오팜을 통해 지난해 8월과 9월 각각 리라글루타이드 성분 제제의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펜믹스가 위탁생산을 주력으로 해 직접 판매보다 제약사에 제품을 공급할 가능성이 큰 만큼 건일바이오팜의 별도 개발은 임상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업체를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행 약사법상 동일 제조소에서 동일한 처방과 제조방법으로 생산하는 위탁 품목의 경우 임상시험자료 작성자는 해당 자료의 사용에 최대 3차례만 동의할 수 있다. 펜믹스와 건일바이오팜이 각각 독립적인 임상자료를 확보하면 이를 활용해 별도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는 위탁사를 최대 6곳까지 늘릴 수 있는 구조다.
한독은 자체 개발 대신 해외 제품을 도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독은 2024년 바이오콘과 리라글루타이드 제품의 국내 독점 판매·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대상에는 비만치료제 삭센다와 당뇨병 치료제 '빅토자'에 대응하는 제품이 포함됐다. 다만 국내 권리를 보유한 한독은 아직 해당 품목의 국내 허가를 신청하지 않은 상태다.
한독 관계자는 "계약 당시와 비교해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등장 등 시장 상황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긴 것이 배경"이라며 "해당 품목의 허가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며 종합적으로 시장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