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지내기 힘든 폭염이 이어진다. 연일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정도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차량과 건물 실내에서 에어컨을 틀고 지내는 시간도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문제는 에어컨을 잘못 관리·사용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 심하면 에어컨 때문에 폐렴 같은 중증질환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사례도 있다. 전문의들의 조언으로 에어컨 바람을 건강하게 쐬는 법을 알아본다.
에어컨을 쐬고 나서 기침과 인후통, 알레르기 증상 등이 나타났다면 에어컨 내부가 먼지·세균·곰팡이 등에 오염된 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특히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에어컨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세균이 '레지오넬라균'이다. 이 균에 오염된 에어컨을 틀면 공기 중으로 레지오넬라균이 퍼지면서 폐렴 같은 호흡기 감염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에서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된 사람 10명 중 1명은 사망했으며, 특히 중증으로 이행한 입원환자의 치사율은 80%에 달했다.
레지오넬라균은 자연에서 호수·강·온천수 같은 담수에 주로 서식하는데, 일부는 토양이나 판매되는 화분 흙에서도 발견된다. 이 균이 여러 경로로 자연에서 벗어나면 냉난방 시스템, 에어컨 냉각수, 온수 시스템 등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 균은 섭씨 20~45도에서 잘 자라는데, 따뜻한 물(냉각수)로 채워진 에어컨 냉각탑은 레지오넬라균이 증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나 다름없어서다.
지난해 7월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 할렘 지역에선 2주 동안 22명이 레지오넬라균에 집단 감염돼, 이 중 1명이 숨졌다. 뉴욕시 보건부는 "할렘 지역 한 건물의 (에어컨 등 냉방시설의) 냉각탑 속 냉각수에서 레지오넬라균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레지오넬라균에 오염된 에어컨의 바람을 쐬면 이 균이 물 분자 입자의 형태로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폐포까지 들어가 증식하면서 호흡기를 공격한다. 심하면 '레지오넬라 폐렴'을 일으킨다. 발병 초기에는 밥맛이 없고, 전신 권태감과 허약감이 있으며,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 이후 오한과 함께 39~40.5도(℃)의 고열이 나타난다. 가래가 없는 마른기침이 나고, 설사·오심·구토·복통 증상이 동반된다. 발병 3일째부터는 흉부 엑스레이(X-ray) 검사상 폐렴 병변이 보인다.
이 균에 감염된 질환인 '레지오넬라증'은 △50세 이상 △흡연자 △만성 폐 질환자 △암 환자 △면역억제요법을 받는 사람이 고위험군이다. 만약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 면역 억제제를 투여한 환자가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되고 초기에 항생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8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윤기욱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만성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낮은 아이가 레지오넬라증에 걸린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80%가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지오넬라증의 합병증으로 근육 세포가 죽어 근육이 녹아내리는 '횡문근 융해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밖에도 폐농양, 호흡 부전, 저혈압, 쇼크, 신부전, 심근염, 신우신염, 부비동염 등이 합병증으로 생길 수 있다.
에어컨의 냉각탑, 저수탱크, 에어컨 필터·물받이 등은 청소·소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특히 에어컨 냉각탑은 1년에 2~4회 주기적으로 청소하며, 염소 처리, 고온 살균법, 자외선 조사, 오존 처리, 구리-은 이온화법 등을 이용해 소독하는 게 권장된다.
바깥은 너무 덥고, 실내는 추울 정도로 실내외 온도 차가 큰 환경에서 몸이 오래 노출되면 '냉방병'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냉방병은 질병명은 아니지만, 냉방 환경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증상을 통칭한다. 두통·피로감·소화불량·근육통은 물론 기침·콧물·인후통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냉방병의 주요 증상이다.
우리 몸은 바깥 온도가 변해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조절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무더운 야외'와 '지나치게 차가운 실내'를 반복해서 오가면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자율신경계에 부담이 커지면서 냉방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냉방병은 처음엔 두통·피로감·소화불량처럼 가볍게 시작하지만,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서 집중력·활동량이 떨어지고,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수 있다. 또 환기가 부족한 공간에서는 실내공기 오염으로 눈·코·목 자극감이나 답답함이 심해질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에어컨을 강하게 튼 실내에서 심해지고 따뜻한 곳에서 쉬면 나아지는 양상이 반복된다면 냉방병을 의심할 수 있다.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옥선명 교수는 "여름철에는 실내외 온도 차로 인해 냉방병이 나타날 수 있다"며 "냉방병을 예방하려면 실내외 온도 차가 5도를 넘기지 않도록 조절하고, 냉방기 바람을 장시간 직접적으로 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냉방병을 막는 데 도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