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구용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을 내년 1분기 안에 국내에 정식 도입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일종의 '암거래'가 형성된 미프진 구매 경로를 공식화해 정부가 관리하겠단 것이다. 의료계는 의사의 양심적 처방 거부권과 미성년자 처방 기준 마련 등 제도적 공백 보완이 우선이란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16일 보건복지부·성평등가족부·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등 관계 부처는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의 국내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쟁점으로 꼽힌 허용 주수는 임신 63일(9주) 이내로 결정됐다. 도입 초기 2년 동안은 의료기관 내 의사의 직접 처방·조제 원칙을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 방식으로 전환한다.
도입 추진을 강하게 반발해 온 의료계는 이번 정부안에 대해서도 환자와 의료인의 보호 장치를 위한 제도가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미프진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단, 이미 장기간 지연된 법제화 과정을 사실상 건너뛴 채 정부가 '선(先) 도입 후(後) 논의' 수순을 밟고 있단 점을 문제 삼는다. 법적 공백 상태에서 약물을 우선 도입할 경우 환자의 안전과 의료인의 법적 보호를 담보할 수 없단 주장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본회는 (미프진)도입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환자 안전과 의료인의 법적 보호를 담보하지 않는 어떠한 도입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에 따른 명확한 임신 중지 관련 규율 △임신 중지 의약품의 허가·처방·조제·투약·부작용 보고에 이르는 제도적 근거 △불완전 유산·과다출혈에 대비한 후속 수술적 처치와 응급 이송 의료기관 요건 △양심적 임신 중지약 처방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보호 방안 등의 마련을 요구했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들은 처방 과정에서 의학적 사유가 아닌 사회·경제적 문제 등 환자의 비의학적인 사유로 약을 처방할 경우, 처방 의사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안나 강릉의료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임신 지속 시 임신부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등 의학적 사유가 있다면 의사들이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 (임신 중지를)할 수 있지만, 의학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낙태를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경제적 상황 등 비의학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시술 책임을 의사들에게 넘기는 건 매우 무책임하다.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기준은 국가가 책임지고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방 의사 자격에 대해서도 의사 단체는 산부인과 전문의만 처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 중이지만, 현재 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자격 기준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다. 미성년자 처방 가능 여부도 논의 단계에 머물러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정부는 향후 관련 법 개정을 비롯해 의료계와 표준 진료지침을 마련하겠단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관련 학회 및 법조계 등과 논의를 거쳐 만든 미프진 처방 관련 안전관리안 초안을 지난주 복지부와 식약처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처음 도입하는 약물인 만큼 도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평가를 거쳐 제도 방향을 재논의하는 보수적인 안전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며 "정부 측에도 이 같은 의견을 담은 안전관리안 가안을 전달한 상태다. 의사의 양심적 거부권 행사, 미성년자 처방 문제 등 법적 근거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처방하는 의사와 처방을 받는 대상인 초기 임신부에 대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며 "처방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 안전성을 담보한 명확한 진료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