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벨라루스 접경지역. 30년 전 오늘(1986년 4월26일) 새벽 옛 소련 영토였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에선 터빈발전기의 관성력 이용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실험을 위해 원자로 출력을 3분의1 정도로 낮추던 상황에서 한 직원이 실수로 원자로가 정지 상태에 이를 만큼 출력을 낮춰버렸다. 결국 원자로의 재가동이 어려운 상황까지 갔고 출력을 다시 높이기 위해 제어봉을 올리는 과정에서 원자로에 무리가 가해졌다.
이 때문에 원자로 반응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핵연료가 순간적으로 파열됐다. 문제는 실험을 위해 각종 안전시스템과 컴퓨터 자동제어시스템을 단절해 놓았던 것. 예기치 않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원전은 폭주했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두 번의 큰 폭발음과 함께 원자로가 위치한 콘크리트 건물 지붕이 날아가고 핵구름이 하늘로 치솟았다. 건물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원자로와 내부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참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고 후 며칠이 지나도록 화재가 잡히지 않으면서 우라늄·플루토늄·세슘·스트론튬 등 치명적 방사성 물질 10톤 이상이 대기에 방출됐다. 이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 총량은 1억 퀴리(Ci· 방사능의 단위)로 추정된다.
소련 정부의 늑장 대응은 피해를 키웠다. 사고 직후 침묵하던 소련 정부는 참사 이틀 뒤인 28일에서야 TV 방송을 통해 사고 사실을 공표했다. 원전 인근 주민을 처음으로 타지역으로 이주시킨 것도 사고 발생 36시간 뒤였다. 체르노빌 참사 당시 숨진 사람은 56명, 수습과정에서 방사능에 노출돼 숨진 사람은 2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후유증으로 숨진 이들까지 합하면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지만 아직도 정확한 사망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06년 자체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3개국에서만 20만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폭자들로부터 발견되는 유전적 결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사고 7개월 지나서야 낙진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원자로 4호기 잔해를 콘크리트 석관으로 덮어씌우는 응급처치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석관의 수명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역시나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콘크리트 방호벽에 금이 가는 등 붕괴 우려가 커졌다. 사고 당시 원자로 안에 있던 연료의 95% 정도가 여전히 석관 안에 있는데, 이 연료의 방사능만 1800만 퀴리로 추정된다.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의 지원을 받아 기존 석관 위에 100년을 더 버틸 수 있는 추가 철제 방호벽을 덧씌우는 작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