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냐, 사회주의냐.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첫번째 경선은 30대 동성애자와 70대 사회주의자의 2파전으로 전개됐다. 민주당 주류를 대표하는 중도 성향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3위권 밖으로 밀렸다. 비주류가 주류를 압도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4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62%의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전날 열린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26.9%의 득표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25.1%)이 2위로 바짝 뒤를 쫓고 있다.
이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8.3%)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15.6%) 순으로 나타났다. 에이미 클로부샤 상원의원(12.6%), 앤드류 양(1.1%)이 그 뒤를 이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던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상원의원이 부티지지 시장에게 선두 자리를 내 준 것은 이변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부티지지 시장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37세의 부티지지 시장은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 가운데 가장 젊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세계최대 컨설팅업체 맥킨지를 거친 엘리트이자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부티지지 시장은 샌더스 의원, 워런 의원 등의 급진좌파들과 거리를 두며 중도파를 표방해왔다.
반면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의원은 78세로 후보들 중 최고령이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젊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 출생)로부터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전국민 단일 의료보험, 무상교육, 부유세 신설 등 샌더스 의원의 급진적 공약들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오와주의 대의원 수는 미국 민주당 전체 대의원(4750명)의 1%에도 못 미치지만, 첫번째 경선이란 점에서 이곳의 결과는 전체 예비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CNN에 따르면 1972년 이후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 8명 가운데 6명이 아이오와주에서 1위를 했던 주자였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위권 안에 들지 못한 후보가 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통상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후원금이 몰리며 남은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반면 낮은 지지율을 보인 후보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점차 지지도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두고 샌더스 의원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경쟁했다. 부티지지 시장과 달리 현직 상원의원 신분인 샌더스 의원과 워런 의원은 워싱턴 상원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 탓에 최근 아이오와주 지역 유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두번째 경선인 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진보 성향이 강한 동부 지역의 특성상 샌더스 의원과 워런 의원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샌더스 의원과 워런 의원의 경우 본선 경쟁력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급진적 성향 탓에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CNN방송은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 자신을 '매우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김동석 미국한인유권자연대 회장은 "대선 본선에선 중도 성향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부티지지 시장의 표의 확장성이 가장 크다는 건 분명하다"면서 "만약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자금력을 갖춘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샌더스 의원도 본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캘리포니아대)버클리 교수는 "미국 정치지형은 이제 진보, 보수가 아닌 기득권 대 반(反) 기득권으로 재편됐다"며 "미국 유권자들 가운데 중도 부동층인 3분의 1는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만큼 중도 성향의 후보들보다는 샌더스 의원과 같은 선명한 반 기득권 진영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