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이념 사이 [특파원칼럼]

베이징(중국)=김지산 기자
2021.10.26 04:27

이달 15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을 통틀어 '시중쉰(習仲勳, 1913~2002)의 가풍'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시중쉰은 전 국무원 부총리이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친이다. 기사가 게재된 날은 시 전 부총리의 생일이었다. 시 주석 가문의 가풍을 본받자는 내용이었다.

공산당 8대 원로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시중쉰 전 부총리 삶은 그 자체로 중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의 나이 15살 때이던 1928년 3월12일 쑨원 서거 3주기 기념 집회에 참가했다가 투옥되고 옥중에서 공산당에 가입했다. 1930년에는 서북군에 입대, 공산당조직공작 활동을 전개했다.

시중쉰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며 마오쩌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다. 2차 국공내전이 시작된 1946년 7월부터 11월까지 마오쩌둥은 시중쉰에게 모두 9차례 친필 군사 작전 편지를 보냈다. 신중국 선포 2개월 후인 1949년 12월 마부팡 추종세력들이 샹첸과 반란을 일으켰을 때 시중신이 단지 군대만 동원했을 뿐 싸우지 않고 샹첸을 굴복시키자 마오쩌둥은 "제갈량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1962년 여름 자신을 비판한 소설 류즈단(劉志丹)에 시중쉰을 엮어 반당세력으로 몰아세웠다. 부총리 시중쉰은 결국 당내 모든 직책에서 해임된 것을 시작으로 16년간 온갖 수모를 견뎌야 했다. 1966년 시베이대학에 구금되는가 하면 2년 뒤에는 베이징으로 이송돼 웨이수취에서 감호 생활을 해야 했다.

아내 치신은 남편과 선을 긋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어린애(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과 구타를 당했다. 시 주석이라고 편할 리가 없었다. 1968년 형제들과 생산건설병단, 생산대에 반강제로 입대했다.

가족사로만 보자면 마오쩌둥은 시 주석에게 원수다. 그러나 시 주석의 사상적 성향은 덩샤오핑보다 마오쩌둥에 훨씬 가깝다. 보통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가족사와 이념의 냉정한 구분은 시진핑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다. 시 주석을 지배하고 있는 이념의 무게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기반한 시 주석의 정치적 행보는 '공동부유'에 이르러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G2 국가로 위상이 급상승하고 2018년 헌법 개정으로 장기 집권의 기반이 마련되자 오랜 숙원이던 근본적 사회주의 국가로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이다. 지난 10년은 '시진핑식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몸풀기였는지 모른다.

권력에 의한 부의 분배와 강력한 사회통제, 상장 기업 압박을 통한 해외자본과 전면적인 충돌을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지난 30년간 애피타이저(전채요리)만 접해온 우리는 본식 메뉴조차 모른 채 중국을 상대하고 있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이 권좌에 올랐을 때 아무도 10년 뒤 그의 통치 방식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정치든 기업이든 정신 바싹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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