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밤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내 한 한인마트에 손님들이 몰렸다. 이들은 채소와 인스턴트 식품을 쓸어담았다.
다음날인 25일. 아침부터 주요 상가 내 식료품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카트에 식량을 담고 또 담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상하이 뒤를 이어 베이징마저 봉쇄될 수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식료품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 23일과 24일 연이어 20명 안팎 감염자가 발생한 게 발단이 됐다.
이번 감염자 절반이 차오양구 거주민으로 집계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25일부터 29일까지 하루 간격으로 3회 전수 검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24일 오후가 되자 전수 검사 결과를 토대로 수일 내 봉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민들이 사재기에 나섰다.
2189만명 베이징 시민 중 차오양구 주민은 약 16%에 해당하는 345만명에 이른다. 봉쇄가 결정되더라도 상하이가 초기에 그랬듯 지역을 촘촘하게 나눈 뒤 소수의 인원만 격리하는 정밀 봉쇄에 그칠 거라는 희망(?)과 상하이 사태를 교훈 삼아 처음부터 대대적인 집단 봉쇄에 나설 거라는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
25일 아침 왕징 내 한 대형 식료품점에서 만난 한국인 오수영(가명, 44)씨는 "물과 쌀은 이미 충분히 비축해놓았지만 채소와 고기류를 사러 왔다"며 "고기야 냉동으로 보관하면 된다지만 채소는 길어봐야 2주 이상 보관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시가 실제 도시 봉쇄를 감행할 경우 상하이처럼 장기화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거의 한 달째 이어지는 집단 봉쇄에도 상하이 일일 감염자가 2만명 안팎을 이어가면서 봉쇄 해제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형편이다.
상하이시는 집단 봉쇄는 없다고 했지만 지난달 28일 도시를 둘로 나눠 나흘간 순차 봉쇄를 '기습적으로' 결정했다. 봉쇄 기간이 길어지자 공무원들 말만 믿고 생필품을 쟁여놓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식량난을 호소하는 지경이다.
시와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 그로 인한 불안은 중국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왕징 식료품점에서 만난 익명의 중국인은 "수도 베이징은 그래도 상하이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당근과 양파, 감자 등이 일찌감치 동이 났다며 아쉬워 했다.
기업들에는 출근 인원 제한조치가 내려오는 등 방역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과 금융권 밀집 지역인 차오양구 샤오윈로 내 현대차그룹은 25일부터 전체 직원의 75% 이내만 출근을 하라는 주민위원회 명령이 내려왔다. 제한적 출근 조치는 코로나19 발발 초기였던 202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왕징 포스코 중국법인은 이날부터 3일간 매일 빌딩 내 모든 인원에 대한 핵산 검사에 들어갔다.
전날 중국 내 31개 성·시·자치구에서 코로나19 감염자는 모두 2만194명(무증상 1만7528명)이 나왔다. 상하이는 1만9455명으로 여전히 하루 신규 감염자가 2만명 안팎을 오가고 있다. 같은 날 상하이에서 신규 사망자 수는 51명으로 집단 감염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