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전 망했어요. 더 잘했어야 했는데…." (11월 10일, 샘 뱅크먼프리드 트위터)
지난 11일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한 세계 3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최대 500억달러(약 66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남긴 채 회사 파산을 결정, 암호화폐(코인) 시장에 대형 폭탄을 투척한 것 치고는 다소 짧은 글이다. (물론 회사는 공식 보도자료를 냈다.)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를 명문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보냈다. 부모가 모두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진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30세의 이 엘리트 사업가는 FTX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헐렁한 반바지 차림을 트레이드마크화하며 각종 행사장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시아 최대 국부펀드 중 한 곳인 싱가포르 테마섹 등이 그의 젊고 참신한 이미지에 반해 FTX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다.
뱅크먼 프리드는 약 3년 만에 회사가치를 320억달러(약 42조원) 규모로 키웠다. 테마섹 뿐 아니라 일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캐나다 교사연금, 미국의 다수 사모펀드 등 다양한 기관 투자자들이 자금을 넣었다. 미 프로농구(NBA) 슈퍼스타 스테판 커리, 미 프로야구(MLB)의 일본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 등 유명인들도 FTX에 투자했다.
하지만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믿었던 이 '코인왕국'은 시장에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지 약 열흘 만에 완전히 무너졌다. 지난 8일 60억달러(약 8조원) 규모의 대규모 예금인출사태(뱅크런)가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론 정확히 나흘 만에 파산 신청이 이뤄졌다. FTX로부터 투자받은 핀테크 업체 로빈후드 주가가 폭락했고, FTX그룹에 투자나 대출을 해 준 블랙록과 세쿼이아캐피털 등도 줄줄이 피해를 봤다.
당연히 개인 투자자들이 손을 쓸 겨를은 없었다. 비트코인 등 주요 코인 시세가 연쇄적으로 급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FTX 파산=코인판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가상자산 산업 자체가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코인계의 JP모건', '코인계의 워런버핏' 등 수식어가 따라 붙었던 뱅크먼 프리드는 한낱 '폰지(다단계 금융) 사기꾼'으로 전락할 상황에 놓였다.
지난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암호화폐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면, 이번 FTX 파산 신청은 거래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화폐처럼 내재가치를 갖지 않은 암호화폐는 참여자 신뢰가 유일한 담보인데, 이것이 흔들린 것이다. 대형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며 모든 거래 내용을 네트워크 참가자들이 공유하거나 열람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의 의미도 퇴색했다.
코인이 고유의 가치 창출 능력을 의심받기 시작했는데,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FTX 파산 신청 기사에 달린 댓글은 코인 시장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준다. "진짜 돈으로 왜 가짜 돈을 사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