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처음 열린 쿼드 회의(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공동성명에 종전에 들어갔던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22일(현지시간)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 20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북한을 "핵 능력(nuclear power)" 보유국이라고 지칭했던 것과 맞물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마코 루비오 신임 미국 국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전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쿼드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 바이든 행정부까지 쿼드 정상회의와 외교장관 회의에서 빠짐없이 들어갔던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북한 관련 내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문단짜리 성명은 과거 성명에 비해 내용 자체가 짧고 중국이나 북한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공동성명에는 다만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현상을 변경하려는 일방적 행동 반대" 등 중국을 겨냥해 써온 표현은 포함됐다.
쿼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의체로 대(對)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주도로 2007년 출범했지만 바이든 행정부 임기 동안 2023년 3월 뉴델리 외교장관회의, 그해 5월 히로시마 정상회의, 지난해 7월 도쿄 외교장관회의, 같은해 9월 미국 윌밍턴 정상회의 등에서 나온 공동성명 또는 정상선언에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북한 관련 언급이 단골 표현으로 들어가면서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7월 쿼드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는 "안정을 훼손하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외교가에선 이번 쿼드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빠진 것과 맞물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 우선순위가 긴장 완화로 바뀌면서 사실상 '북핵 용인'의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비핵화 대신 핵보유 자체를 인정하고 핵군축 또는 핵동결을 협상 카드로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말 언급한 핵능력 보유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배타적 권한을 인정받는 '핵무기 보유국'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를 비공식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수장을 맡은 루비오 장관이 21일(현지시간) 취임사에서 "글로벌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평화 증진과 분쟁 회피"라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 우선순위가 긴장 완화라는 점을 분명히 한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루비오 장관은 취임 직후 쿼드 동맹국 외교장관과의 회동을 첫 일정으로 시작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 핵심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과 2019년 1,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을 당시에도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비오 국장관은 2019년 2차 북미 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은 아직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향한 대미 정책을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2기 대북 정책이 구체화되기까지 일단 지켜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은 핵능력 보유국" 발언에도 유엔 회의에서 북한대사가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노력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게 전부다.
북한 매체는 이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소식을 논평 없이 사실 위주로만 짧게 보도했다. 북한 관영 매체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해당 소식을 다룬 건 처음이다.
정기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가 시작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 연설을 통해 직접 대미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의 전략적인 외교 대응이 시급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정국에 따른 권한대행 외교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국내 정치적 혼란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신속 대응하는 데 명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격변하는 정세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