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러시아에 가시겠어요? 다음달에?"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5.03.31 04:05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억류 중 UAE로 중재로 석방된 러시아 전쟁 포로 175명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2025.03.20 /AFPBBNews=뉴스1

"중국 한 기업인협회 사람이 다음달에 러시아에 함께 가시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이 전쟁통에."

얼마 전 중국 상황에 정통한 한 한국 연구기관 중국 현지 센터 책임자를 만났다. 중국의 한 중견중소기업인 모임에서 러시아 방문 의사를 타진하더라고 했다. 중국의 기업인 모임은 경제 현장의 기저여론을 만들어내는 단위이며, 정부와 연동돼 정부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러시아 방문을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거다.

기업인 러시아 방문단은 다만 공식적으로 모집되는 조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이 공식적으로 몰려갈 단계라면 한국 전문가까지 끼워넣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알음알음 방문단 구성은 중국 정부가 어떤 대외 전략을 시작할 때 취하는 프로토콜 그대로다. 전문가 집단을 현장에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운 후 최종적으로 지도부 레벨이 움직인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중국은 물론 어떤 나라의 기업인단도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 적 없다. 중국이 움직임에 나선 만큼 조만간 의미있는 수준의 기업인 집단이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 움직임이 시작된 시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우 간 흑해 30일 공격 중단을 압박해 냈던 때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의도는 러시아 전후재건 참여일 공산이 크다.

전장의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이며 피해도 우크라이나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지만, 러시아와 밀접한 중국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는 실제 피해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우크라아나군의 러시아 본토 공격으로 인접 산업시설들은 사실상 쑥대밭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이 우크라이나군에 장악되는 과정의 피해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파괴된 것뿐 아니라 떠나간 것들도 놔두면 폐허가 된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546개 외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완전 철수했고, 504개 기업이 영업을 중단했다. 특히 항공, 자동차, 에너지, 금융 기업들은 거의 모두 철수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식품 및 소비재 분야 기업들만 일부 잔류했을 뿐이다. 상당 영역이 백지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에 가서 직접 보겠다는 중국의 움직임은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각기 시나리오를 세워 놨다는 뜻이다. 러시아가 휴전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며 국면은 안갯속이지만, 그럼에도 휴전을 압박하고 나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도 종전 이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복안이 있음이 당연하다.

이 센터 책임자는 "중국이 벌써 러시아 전후재건의 과실을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실감했다"며 "한국도 러시아와 기존 관계나마 재구축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종전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재건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완전 철수한 것처럼 보이는 선진국 자본들이 사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주변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한국 금융기관 중국 현지법인장은 "얼마 전 한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러시아 철수 자금을 일시 보관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유일하게 법인을 남겨둔 한 한국계 은행 현지법인이 역대 최고 실적을 구가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러시아 철수 자금 파킹 덕이란다.

글로벌 선진국들은 언제든 자본을 러시아에 재투입할 수 있고, 중국 등 주변국들은 러시아 전후재건에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쏟아부을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복잡한 국내 정치상황과 별개로 우리 기업과 정부 부처 현업 담당자들 역시 러시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재건사업 참여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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