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더 내라" 美국방, 방위비 압박

윤세미 기자
2025.12.08 04:00

헤그세스 "모범동맹국에 혜택… 무임승차 국가 불이익"
美안보 최우선순위 '서반구'… 유럽연맹 분열 심화 전망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사진)이 6일(현지시간) 국방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까지 늘린 한국을 '모범동맹'으로 꼽으면서 국방비를 충분히 늘리지 않는 동맹들은 대가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열린 '레이건국방포럼' 연설에서 미국의 국방지출 확대요구에 부응한 한국, 이스라엘, 폴란드, 독일,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을 "선도적으로 행동하는 모범동맹"이라고 칭하면서 "미국은 이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의존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십의 본질"이라고 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특히 한국이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늘리기로 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른 동맹들도 몇 년 안에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닛케이는 이것이 일본과 호주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국방비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새로운 국제기준으로 미국은 이를 충족하도록 전세계 동맹에 요구한다"면서 "집단방위에서 본연의 역할을 여전히 못하는 동맹들은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는 앞서 GDP의 3.5%를 국방비로, 1.5%를 인프라 등 관련지출로 배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헤그세스 장관은 또 "유럽 동맹엔 러시아가, 한반도엔 북한이 있으며 이란은 여전히 중동의 위협"이라며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동맹들은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더 나서야 한다. 더이상 무임승차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6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에서 열린 연례 레이건 국방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사진=(시미밸리 로이터=뉴스1) 김지완 기자

◇NSS, 미국 안보정책 최우선순위는 '서반구'=헤그세스 장관의 이날 연설은 백악관이 미국의 외교·안보목표와 달성방안을 제시한 국가안보전략(NSS)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이뤄져 눈길을 끈다. 이번 NSS는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강조한 중국·러시아 대응비중을 줄이고 서반구(북미·중미·카리브해·남미)를 미국 핵심이익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다. 1823년 미주 전체를 미국의 세력권으로 천명한 '먼로주의 확장'을 선언한 셈이다.

현재 미국이 카리브해에 배치한 군함의 규모는 역대 최대수준으로 10여척에 달하는 함정과 1만4000명 이상의 병력이 투입됐다. 미국 정부는 카리브해와 동부 태평양에서 마약밀수선으로 지목된 선박을 대상으로 22차례 공습을 감행했으며 베네수엘라 영토를 향한 공습도 저울질한다.

헤그세스 장관은 국방부가 "파나마운하, 카리브해, 아메리카만, 북극, 그린란드 같은 주요 전략요충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상업적 접근을 보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적성국이 서반구에 군사력이나 위협적 능력을 배치하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헤그세스 장관은 두 번째 우선순위로 "대결이 아닌 힘을 통한 중국 억지"를 꼽았다. 미국과 동맹들 사이의 "부담공유" "미국 방위산업 기반의 획기적 강화"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면서 대중 접근법에 대해선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인식하도록 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북한·한반도 비핵화" 언급 사라져…유럽엔 "문명의 소멸" 위기비판=한편 이번에 발표된 NSS엔 북한이나 한반도 비핵화가 별도로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트럼프행정부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도가 낮아진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북미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외교적 유연성이란 해석이 나왔다.

오랜 동맹인 유럽을 향해 "문명의 소멸" 위기에 있다고 지적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NSS는 유럽국가들이 개방적 이민정책과 과도한 규제 등으로 정체성이 훼손되고 존재감이 희미해진다면서 미국의 목표는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유럽이 현재 궤도를 수정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전문가들은 트럼프행정부가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을 얼마나 급격히 재편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고 전세계에 서구적 가치를 확산해온 대서양 동맹 내 분열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카티아 베고 선임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유럽 지도자들은 정통적인 대서양 관계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는 미국의 고립주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유럽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재편하려는 트럼프정부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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