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주요국간 석유 거래에 개입하면서 에너지 시장을 재편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중국에 비교적 값싼 원유를 제공해온 나라들이나 그 주변국을 제재하는 결정이 잇따른다. 미국 '일방주의'에 맞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캐나다 등 과거 우방국이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자 원자재 공급망을 장악, 중국 측 세력화를 견제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에 있어 관세는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가로 미국은 인도와의 상호관세를 종전 25%에서 18%로 낮췄다. 인도는 기존 상호관세 25%에 러시아와 거래한다는 이유로 제재성 관세 25%까지 총 50% 관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세계 세번째로 큰 석유 소비국인 인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이후부터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원유를 구매해왔다. 러시아산 원유의 35~40%를 인도가 소화해 왔다. 인도는 수십 년간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해온 관계도 있다. 미-인도간 이번 합의로 러시아는 원유수출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는 미국과 잠재적으로 베네수엘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석유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며 "이것은 현재 수천 명이 매주 목숨을 잃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인도와의 무역 협정을 통해 러시아의 자금줄을 옥죄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흘러들어가는 '실탄'을 차단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2기 집권 직후부터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력과 외교적 위협을 동원, 베네수엘라의 석유 빗장을 열었다. 지난달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 축출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관련한 통제권을 장악했다. 이후 카리브해 남부에 배치된 미 해군 함정들은 제재 대상인 베네수엘라 유조선들을 나포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베네수엘라는 현재 대부분의 원유를 미국 걸프 연안의 정유소에 판매중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 동안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량은 2024년 12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장악 전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 석유 대부분은 중국으로 향했는데, 이 흐름을 차단한 것이다. 중국의 에너지 공급줄을 끊는 동시에 미국 내 유가를 안정시키고 미국 석유 기업들에 거대한 먹거리도 제공한다. 트럼프 특유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석유 등 에너지 부문에 드러난 셈이다. 미국과 긴장이 고조되는 이란 역시 중국에 원유를 값싸게 공급해 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쿠바와 석유 거래를 하는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로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던 쿠바는 에너지 공급원이 끊긴 상태에서 영하의 날씨를 견뎌야 했다. 미국의 압박에 멕시코는 이번 달 초 쿠바에 보내기로 했던 원유 선적 계획을 철회했다.
에너지 전문가 프란시스코 모날디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조치는 멕시코가 쿠바에 기름을 못 팔게 하려는 명백한 위협"이라며 "쿠바는 매우 빠르게 비참한 상황(인도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