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서 AI(인공지능) 발전과 확대에 따라 사업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들에 대한 매도세가 확대되며 AI(인공지능) 공포 트레이드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S&P500지수는 11일(현지시간) 보합권에서 마감했지만 AI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의 주가 하락은 격렬했다.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AI 공포 트레이드는 일주일 사이에 사모 신용회사와 자산 관리회사, 보험 중개회사, 부동산 서비스회사를 잇달아 덮쳤다.
11일엔 특히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회사들의 주가 하락이 심했다. 이날 CBRE 그룹과 존스 랭 라살의 주가는 각각 12% 급락했고 쿠시먼 & 웨이크필드 주가는 14% 추락했다. CBRE 그룹과 쿠시먼 & 웨이크필드의 이날 하락률은 코로나19로 증시가 붕괴됐던 2020년 이후 최대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회사는 기업들이 어디에 사무실을 내고 운영할지 컨설팅하는 기업 부동산 전략 수립과 부동산 자산 및 건물 관리, 빌딩 매매 중개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의 주가 급락은 AI가 고임금의 노동 집약적인 부동산 컨설팅 및 데이터 분석 업무를 대체하고 AI가 사무직 업무를 상당 부분 자동화하면서 기업들의 사무실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이날 소프트웨어주도 3일간의 숨고르기 끝에 하락세가 재개됐다. 이날 개장 전에 실적을 발표한 3D 컨텐츠 제작 엔진 플랫폼인 유니티 소프트웨어는 기대 이하의 실적 가이던스를 제시하면서 주가가 26% 폭락했다. 인튜이트와 서비스나우는 5%대, 세일즈포스는 4%대의 하락률을 보였고 어도비는 3% 가까이 떨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각각 2.2%와 2.8% 내려갔다.
국내 독립 보험 대리점인 GA 성격의 미국 보험 중개회사들의 주가도 이번주 AI 폭탄을 맞았다. 이는 지난 9일 스페인의 온라인 보험사인 투이오가 챗GPT 기반의 주택보험 추천 앱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 보험 앱은 소비자가 챗GPT 대화창에서 호출하면 대화만으로 그 소비자에게 꼭 맞는 주택보험 견적을 실시간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보험 계약과 이후 관리까지 전 과정을 처리해준다. 이 보험 앱이 보험 판매 승인을 받으면서 보험 중개사들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미국의 보험 중개회사인 마시 & 맥레넌, 아서 J. 갤러거, 에이온, 브라운 & 브라운, 윌리스 타워스 왓슨, 구스헤드 인슈어런스 등의 주가는 지난 9일 7~13%까지 급락한 뒤 11일에도 약세를 이어갔다. 특히 상업용 보험 중개회사인 마시 & 맥레넌보다 개인용 보험 판매 비중이 높은 브라운 & 브라운이나 구스헤드의 타격이 심했다.
오픈AI는 성인 3명 중 1명이 챗GPT에서 금융 리서치를 하고 있다며 챗GPT에 투이오 외에 다른 보험 앱들도 탑재하고 있다. 챗GPT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보험 비교 플랫폼인 인슈리파이는 자동차보험을 중심으로 여러 보험사의 다양한 보험을 비교해준다.
지난 10일엔 독립 재무설계사들에게 기술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트루이스트가 자사의 AI 플랫폼인 헤이즐을 통해 고객의 개인 세무신고서와 급여 명세서, 계좌 내역서 등을 읽고 몇 분만에 개인화된 세무 전략을 수립하고 자산 배분을 제안하는 서비스를 공개했다.
이에 따라 금융서비스 회사인 LPL 파이낸셜과 찰스 슈왑, 레이먼드 제임스 파이낸셜, 아메리프라이즈 파이낸셜 등의 주가가 지난 10일 6~9%가량 하락했다. 11일에도 LPL 파이낸셜은 6%, 찰스 슈왑과 아메리프라이즈 파이낸셜은 각각 4%의 하락세를 이어갔다.
소프트웨어 회사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은 사모 신용회사들의 주가도 역풍을 맞았다. AI가 소프트웨어 회사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면 채권자인 사모 신용회사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블루 아울 캐피털은 11일 한 때 13% 이상 급락하다 낙폭을 줄여 2.8% 하락으로 마감했고 아레스 매니지먼트도 이날 한 때 12% 수준까지 추락했다가 종가 기준으로는 0.3% 강세 마감했다. 아폴로 매니지먼트는 4% 떨어졌다.
키프, 브루엣 & 우즈의 애널리스트인 제이드 라마니는 이날 고객 메모에서 "투자자들은 높은 수수료의 노동 집약적 수익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AI 주도의 파괴적 혁신에 취약하다고 보고 자금을 거둬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여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좀더 지켜봐야 할 문제인데도 투자자들이 복잡한 거래 체결 과정에 드리운 리스크에 단기적으로 과민 반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나 보험 중개업, 자산관리업 등은 복잡한 거래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 AI가 당장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음에도 투자자들이 AI의 위협을 과장해 즉각적인 주식 매도로 대응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UBS의 애널리스트인 브라이언 메러디스는 보험 중개업에 대해 "개인 자동차보험 같은 소액의 표준화된 보험은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상업용 보험 같은 복잡한 보험 계약 결정은 여전히 전문가의 조언이 중요하다"며 "AI가 소비자들의 보험 선택을 도울 수는 있지만 전문가 조언의 필요성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리즈의 애널리스트인 조 딕스타인도 "부동산 임대와 자본시장 사업에 대한 AI의 위협은 제한적"이라며 "CBRE 등 부동산 서비스회사들은 의미 있는 수준의 규모와 축적된 데이터, 업계 내 관계 등의 강점을 보유하고 있어 대형 임대 및 부동산 거래에서 중개업체로서의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