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 판결로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등 일부 관세가 무효가 되자 무역법 122조 등 대체 법안을 활용해 전 세계 교역국으로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물품에 1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와 반도체, 철강 등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품은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단한 대상이 아닌 품목별 관세로 묶여 있는 데다 대체관세까지 추진되면서 상호관세 무효 판결 이후 대미(對美) 통상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 판결 뒤 백악관에서 개최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에 매우 실망했지만 좋은 소식은 이런 끔찍한 판결을 한 대법원은 물론 의회도 인정하고 IEEPA에 따른 관세보다 강력한 수단, 방법, 법규, 권한이 있다는 것"이라며 무역법 122조를 언급했다. 무역법 122조는 미국 대통령에게 국제수지 대응을 위해 최대 150일 동안 최고 15%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며 "새로운 관세는 아마 사흘 후 발효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무역법 122조에 따라 관세가 유지되는 150일 동안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201조와 301조, 관세법 338조 등 다양한 대안 수단을 동원해 조사를 진행하겠다"며 "궁극적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걷게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대법원이 이날 6대 3 의견으로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정책 등이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한국 등 대부분 국가에 부과한 상호관세와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부과한 이른바 '펜타닐 관세' 조치 등이 무효화됐지만 집권 2기 핵심 기조로 내세운 관세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등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 등과 체결한 무역합의에 대해서도 "상당수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그렇지 않은 일부는 대체하겠다"고 말했다. 상호관세 등을 납부한 기업들의 관세 환급 요구와 관련해선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에 이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수년 동안 법정에서 환급 문제를 다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도 이날 관세 대체 수단을 언급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301조 조사는 법적 근거가 매우 탄탄하다"며 "향후 며칠이나 몇 주 안에 막대한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불공정 관행에 대한 조치가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댈러스 경제클럽 연설문을 통해 "무역법 122조에 무역확장법 232조와 301조 관세 권한을 결합하면 2026년 관세 수익은 사실상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대법원은 관세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IEEPA 권한의 한계를 지적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JD 밴스 부통령은 소셜미디어 엑스(X) 계정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 판결은 명백한 무법 행위"라며 "대법원이 대통령의 수입 규제 권한을 부정해 미국 산업 보호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체 관세 방침을 밝히면서 대미 통상 여건은 당분간 안갯속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호관세 등에 대응하면서 상당한 대미투자를 합의한 한국, 일본 등은 정책 불확실성이 상당한 모양새다.
한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 조사 우려도 겹쳤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일으킨 쿠팡과 관련해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들이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아 트럼프 행정부에 관세 조사를 청원하면서 무역법 301조를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이날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 조사 대상국이 어느 나라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