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최악 빌런' 볼드모트가 행운? 악당에 푹빠진 중국[트민자]

정혜인 기자
2026.02.22 06:05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말포이(馬爾福, MaErFu)'로 검색한 결과 /사진=틱톡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제(음력 설). 춘제 연휴 기간 중국 전역에는 수억 명이 고향을 오가는 세계 최대 인구 이동이 벌어지고, 주요 거리와 각 가정은 홍등과 춘련(春聯·복을 기원하는 빨간 종이)으로 뒤덮인다. 올해는 의외의 인물이 중국 전역을 장식해 눈길을 끌었다. 영화 '해리포터'의 악역 캐릭터 볼드모트와 드레이코 말포이다.

중국신문망·환구망 등에 따르면 춘제 연휴 전부터 타오바오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에는 말포이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와 자석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말포이 춘제 세트' 상품이 등장했다. 쇼핑몰에는 말포이 얼굴이 박힌 초대형 새해 인사 현수막이 걸렸다. 서방 판타지 영화의 빌런들이 어떻게 중국 최대 명절을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됐을까.

/사진=중국 SNS

"말포이 길조의 상징"…배우 톰 펠튼 직접 밈 동참
/영상=연극 '해리포터와 저주 받은 아이' 공식 인스타그램

춘제 연휴 기간 틱톡, 웨이보 등 SNS(소셜미디어) 플랫폼에는 말포이 얼굴이 인쇄된 춘련을 집 현관문에 붙이는 사진과 영상이 연이어 공유됐다. 이들은 말포이 얼굴로 된 춘련을 현관에 거꾸로 불이며 "올해는 말포이가 복을 가져다준다"고 적었다. 중국 춘제 풍속 중 하나인 '다오푸'(倒福)를 패러디한 것이다.

다오푸는 새해가 되면 대문이나 벽에 빨간 종이에 쓰인 '복'자를 거꾸로 붙이는 풍습이다. 뒤집힌다는 뜻의 중국어 '도'(倒)와 도착하다라는 뜻의 '도'(到)의 발음은 모두 '다오'로 같다. 이 때문에 '거꾸로 된 복'(倒福)은 '복이 왔다'(到福)는 의미로 해석된다.

말포이가 올해 춘제의 상징이 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말포이의 중국어 표기는 '마얼푸'(馬爾福)다. 마얼푸의 첫 글자 '마'(馬)는 12간지 중 올해의 동물인 '말'을, 마지막 글자인 '푸'(福)는 '복'을 의미한다. 2026년 병오년 말의 해를 맞아 '말'과 '복'을 합친 말포이의 중국어 이름은 그 자체로 완벽한 길조의 상징이 됐다.

중국 누리꾼들은 "마얼푸다오(馬爾福倒· 말포이가 거꾸로 있다)"라고 외치며, 이를 "말의 해에 복이 왔다(馬年福到)"는 의미로 즐겼다. 말포이를 연기한 배우 톰 펠튼도 이 소식을 접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말포이가 중국 설날 마스코트가 됐다"는 내용의 보도를 공유했다. 또 말포이 얼굴이 인쇄된 춘련을 자신의 대기실 문에 붙이는 패러디 영상을 올렸고, 이후 중국 내 '말포이 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福' 발음 같다는 이유로…'살인마' 볼드모트도 문 앞에
/사진=중국 바이두

해리포터의 또 다른 악역 볼드모트(伏地魔·푸디모) 역시 첫 글자 '푸'(伏)가 '복'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말포이와 함께 춘제 기간 '행운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서 '볼드모트'를 검색하면 '복'자를 든 볼드모트의 합성 사진이 다수 등장한다.

일부 누리꾼들은 '오복림문'(五福臨門·5개의 복이 문 앞에 찾아온다) 속 '복'(福)자를 볼드모트 이름에 사용된 '복'(伏)으로 바꿔 "문 앞에 볼드모트 5명이 대기 중"이라는 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는 주인공 해리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자 해리의 숙적이고, 말포이는 해리에게 집착하고 경계하는 악역이다. 그런데 캐릭터의 성격이나 서사와는 관계없이 중국어 이름이 '복'과 비슷하게 발음된다는 이유로 '행운'이라는 의미로 소비됐다.

주요 외신과 현지 전문가들은 중국 춘제의 '말포이 열풍'을 중국 젊은 세대의 문화 감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취업난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전통문화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자신들이 익숙한 대중문화 코드로 재해석하는 '디지털 민속'의 일종으로 본 것이다.

중국 뉴미디어 연구의 권위자인 펑란 인민대 교수는 앞서 '디지털 시대의 문화 전승'이라는 논문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뉴미디어는 "전통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재생산하는 '문화적 재구성'의 장"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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