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테러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 인사가 17일(현지시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의 정당성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사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조 켄트 미 국가대테러센터(NCTC) 국장은 이란전쟁 18일째인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많은 고민 끝에 오늘부로 국장직을 사임하기로 결정했다"며 양심상 이란에서 진행 중인 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가대테러센터는 미국의 테러 관련 정보를 총괄 분석하는 기관으로 센터를 이끄는 국장은 흔히 '미국 대테러 수장'으로 불린다. CIA, FBI 등 여러 기관에서 수집된 테러 정보를 통합·분석해 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에 보고하는 핵심 자리다. 이란전쟁으로 미국에 대한 테러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대테러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 인사이자 친(親)트럼프 인사가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진 사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켄트 국장은 사임 과정에서 이란전쟁의 핵심 명분인 '이란의 임박한 위협'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켄트 국장은 이날 SNS 게시글에서도 "이란은 미국에 즉각적 위협이 되지 않았고 우리가 이 전쟁을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미국 내 강력한 로비에 의한 압박 때문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사진도 공개했다. 켄트 국장은 서한에서 "집권 1기 당시 대통령 당신은 우리를 끝나지 않는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고 어떻게 군사력을 결정적으로 적용할지를 현대의 어떤 대통령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며 "당신은 이를 가셈 솔레이마니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하고 ISIS(미군의 '이슬람국가' 호칭)를 물리침으로써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어 "이 행정부(트럼프 2기) 초기에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와 미국 언론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당신의 미국우선주의 플랫폼을 완전히 훼손하고 이란과의 전쟁을 조장하는 잘못된 캠페인을 벌였다"며 "이런 캠페인이 '이란이 미국의 임박한 위협이며 지금 공격한다면 신속한 승리로 가는 명확한 길'이라고 믿도록 속이는데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켄트 국장은 "이는 거짓말이었고 이스라엘이 우리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참한 이라크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한 전술과 같다"며 "이런 실수를 다시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길 기도한다"며 종전 결단을 촉구했다.
켄트 국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이란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 내부 논쟁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은 그동안 군사 행동에 나설 때 미국 본토나 자국민에 대한 직접적 위협, 동맹 방어 필요성 등을 명분으로 제시해왔다. 켄트 국장의 발언은 이런 판단을 둘러싸고 정보기관과 정치권 사이에 시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켄트 국장의 사임으로 중동 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오랜 논쟁도 재부각하는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이란을 중동 안보 질서를 위협하는 핵심 세력으로 보고 강력한 군사 압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직접적 국익과 거리가 있는 분쟁에 개입할 경우 또 다른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켄트 국장이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이 미국의 직접적 안보 위협보다는 동맹국 안보 상황과 정치적 판단으로 확대됐다는 문제 제기를 하면서 논란은 더 커질 조짐이다. 중동 정책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이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대한 논쟁도 다시 불붙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란의 실제 위협 수준과 관련한 정보 판단이 추가로 공개될 경우 논쟁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일 당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을 두고도 전쟁 명분을 둘러싼 논란이 컸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화학·생물무기와 핵무기 개발 능력을 갖춰 미국과 동맹국에 위협이 된다며 군사작전을 정당화했지만 전쟁 이후 현지 조사에서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