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호르무즈에 군함 보내라"…한국 콕 찍어 보낸 '안보청구서'

트럼프 "호르무즈에 군함 보내라"…한국 콕 찍어 보낸 '안보청구서'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3.15 06:08

[미국-이란 전쟁]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 당한 태국 화물선./AFP=뉴스1 /사진=(AFP=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 당한 태국 화물선./AFP=뉴스1 /사진=(AFP=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이란과 전쟁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한 구상으로 한국 등 5개국을 콕 찍어 사실상 군함 파견을 요구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제공해온 군사동맹에 대한 대가를 빌미로 우방국에 전쟁 리스크를 분담시키는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청구서를 보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전쟁에서 이스라엘 외에 다른 국가에 군사작전 동참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군함을 보내 호르무즈 해협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고 압박한 한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개시 이후 '충분한 안보 부담을 하고 있지 않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표했던 나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면담했을 당시만 해도 이란과 전쟁에 대한 지원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SNS에선 직접 한국 등을 명시해 "군함을 보낼 것(will be sending)"이라고 단정적인 표현까지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첫 해였던 2020년 SNS에 돌연 "땡큐 삼성"이라는 글을 올려 미국 현지공장 건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방식으로 삼성전자를 압박,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가전공장 건설 계획을 받아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게시글을 두고 정부가 지게 될 정치·군사적 고민의 무게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요구는 실제 군사력 투입이라는 점에서 관세나 투자, 방위분담금 증액 등 그동안 요구했던 돈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였던 2020년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엔 아덴만에 파병했던 청해부대의 작전 영역을 넓혀 독자적으로 한국 선박을 호위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한미동맹에 부응하면서도 이란과 적대적 관계를 최대한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요구는 미국과 이란이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고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가 전쟁의 최대 분수령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전후(戰後)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하면 더 어려운 난제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함 파견 규모나 구체적인 역할을 밝히진 않았지만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된 군사작전은 인명 피해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도 결단이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SNS 글에서 "이란의 군사적 능력을 100% 파괴했지만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패배했더라도 이 해협의 어딘가에 드론 한두 기를 보내거나 기뢰를 투하하거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언급했듯 작전 자체의 위험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호위할 수 있다고 언급한 이후 열흘여가 지나도록 미군의 호위 작전이 실행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피해 가능성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도 호르무즈 해협 관련 작전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호르무즈 해협은 32㎞ 정도의 좁은 해협이기 때문에 해상에서 설치된 기뢰나 육상에서 날아오는 드론, 미사일 등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원유 공급 차질의 이해 당사국이라는 점과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정상화를 군함 파견 요구 명분으로 내세운 것 역시 이런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란 역시 이런 상황을 트럼프 대통령 압박과 전쟁 버티기 전략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방치한 채 전쟁을 마무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이 빚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개시 전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위험을 보고받았지만 이란이 해협 봉쇄 전에 항복하거나 해협이 막혀도 미군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낙관하면서 이란 공격을 승인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날 보도했다.

전쟁이 2주를 넘기면서 장기전 우려가 국제유가와 금융시장을 흔들고 미국 집권여당인 공화당과 핵심 지지층에서도 오는 11월 중간선거 우려가 커지자 백악관은 최근 에너지·경제 참모진과 연방정부 기관에 유가 안정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군사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호르무즈 해협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인 셈"이라며 "봉쇄 상황을 그대로 두고 승리선언을 하자니 덧날 게 뻔하고 가시를 제거하자니 위험 부담이 너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군함 파견을 요구한 것을 두고선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압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큰 우방국으로 미국의 이란 공습 직후부터 이란에 대한 공격을 비판해왔다. 이란도 최근 위안화로 거래한 원유를 실은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 운항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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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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