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에도 이자를"…은행권 vs 코인 업계, '클래리티법' 전쟁

김하늬 기자
2026.04.05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디지털 자산 제도화 기본법, 美 상원 문턱서 수개월째 표류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미 상원에 계류중인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법, 일명 '클래리티법(CLARITY Act of 2005)' 이미지를 AI로 구현한 모습

미국 의회가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와 규제를 포괄적으로 정리한 일명 '클래리티법(CLARITY Act of 2025)' 논의가 상원 문턱에서 수개월째 교착 상태에 머물고 있다.

클래리티법은 지난해 7월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뒤 상원 발의안인 '책임 있는 금융 혁신 법(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 of 2025, RFIA)'과 병합 논의를 거쳐왔다.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기조였던 만큼 공화당 주도의 신속한 입법이 예상됐으나,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반대 여론에 밀려 지체됐다. 올해 1월 상원 은행위원회가 은행 측 요구사항을 반영한 수정안을 공개하자, 이번에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숙의 절차가 사실상 멈춘 상태다.

교착 상태의 이면엔 스테이블코인 예치이자 지급 금지와 탈중앙화 금융(DeFi) 규제 강화를 둘러싼 가상자산 업계와 전통 금융권 간의 첨예한 이해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하원 클래리티법과 상원 수정안을 비교·분석해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자산 업계의 재편 양상을 짚어보고,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점과 규제 관할 논쟁을 따라가며 향후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은행연합회 vs 코인베이스...제정법 두고 '힘겨루기'

클래리티법의 정식 명칭은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 법(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of 2025)'이다. 법안은 가상자산 개발자에게는 SEC 관할 아래 자금 조달을 위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시장 참여자에겐 CFTC 감독을 받는 플랫폼에서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SEC가 개별 코인의 증권성을 사후적으로 판단하고 제재해 온 이른바 '집행 중심 규제'에서, 예측 가능한 '규칙 기반 규제'로 전환하기 위한 기본법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게재한 밈코인 투자자 저녁만찬 광고 이미지.(출처 : 트럼프 트루스소셜)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클래리티법은 디지털 자산을 △디지털 상품 △증권형 토큰 △허가된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구분하고 유형별 감독기관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주식이나 수익권을 디지털화한 증권형 토큰은 기존처럼 SEC가 맡고, 증권성이 없는 디지털 상품은 상대적으로 규제 강도가 낮은 CFTC 감독 아래로 이동시키는 구조다. 지니어스법(GENIUS Act)의 적용을 받는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은 별도 감독체계에서 다뤄질 것으로 전제돼 있다.

모든 코인이 '디지털 상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클래리티법은 '성숙한 블록체인(Mature Blockchain)' 개념을 신설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실질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분산된 참여자에 의해 유지되는 개방적·중립적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발행인을 포함한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지분율이 20%를 넘지 않아야 하며, 제3의 기술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성숙' 단계의 디지털 자산은 디지털 상품으로 인정받아 SEC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숙 단계의 디지털 자산은 12개월간 최대 7500만 달러까지 SEC 등록 없이 자금 조달이 가능한 면제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요건을 아직 충족하지 못한 '성숙 전' 단계의 디지털 자산은 계속해서 증권법상 규제를 받는다.

하원에서 바통을 넘겨받은 상원 은행위원회는 계류 중이던 RFIA와 클래리티법을 병합한 초안을 공개한 뒤, 약 100일간 업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를 토대로 한 수정안(ANS)이 올해 1월 공개됐는데, 하원안에 없던 조항들이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수익(보상) 제한 △토큰화된 주식 제한 △DeFi 감독·보고 요건 강화 등이다. 하원안에는 스테이블코인 수익률 관련 조항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변화 폭이 크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수익(보상) 제한은 은행권 요구가 반영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권은 지니어스법이 발행사의 이자 지급을 금지하는 과정에서 거래소 등 제3자가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 확산됐다고 보고, 규제 강화를 주장해 왔다. 미국 은행연합회(ABA)도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의 대체재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발행사뿐 아니라 플랫폼 전반에서 스테이블코인 보유에 대한 이자·보상 지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상자산 플랫폼 코인베이스의 CEO(최고경영자) 브라이언 암스트롱 /사진 AFPBBNews=뉴스1

이번에는 가상자산 업계가 반발했다. 클래리티법을 적극 지지해 온 코인베이스는 공개적으로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X(옛 트위터)에 "상원 초안 문구를 검토한 결과 코인베이스는 현재의 법안을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개정안대로라면 CFTC의 권한이 약화되고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보상 제공이 어려워진다"며 "나쁜 법안보다는 법안이 없는 편이 낫다"고 비판했다.

이튿날 상원 은행위원회는 법안 심의 일정을 취소했다. 로이터통신은 위원회 내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조항을 두고 의견 차가 있었으며, 암스트롱의 공개 반대가 갈등을 부각시켰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인베이스가 업계 로비를 주도해 온 기업으로, 사실상 업계의 '승인 도장' 역할을 해왔다고 비유했다.

상원 일정이 지연되는 사이, 통화감독청(OCC)이 2월 25일 지니어스법 후속 조치로 규칙 제정안을 발표하면서 교착 상태를 더욱 심화시켰다. 상원 수정안과 마찬가지로 제3자 스테이블코인 수익률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표류하자 3월 초부터 백악관이 중재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개인 간 결제 등 특정 상황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보상을 허용하되 보유량에 대한 이자성 보상은 금지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가상자산 업계는 타협안에 동의했지만 은행권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이 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은행들이 크립토 법안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지니어스법이 은행들에 의해 위협받고 약화되고 있으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은행들은 가상자산 업계와 좋은 합의를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예금의 보완제인가 대체제인가

상원 수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결제 인프라로 한정할 것인지, 사실상의 예금성 자산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전통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의 전선을 드러낸다.

사진=AI(나노바나나) 제작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에 이자나 리워드 등 금전적 유인을 허용하면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수단을 넘어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고, 그 순간 은행의 자금 조달(예금) 기반과 충돌하게 된다고 본다.

미 재무부 산하 차입자문위원회(TBAC)는 지난해 4월 '디지털 머니'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공식적으로 이자를 지급할 경우 상업은행 예금 중 약 6조600억 달러가 가상자산 플랫폼으로 유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수치는 2024년 기준 전체 예금액(17조8000억 달러) 가운데 언제든 인출 가능한 요구불예금(DDA) 5조9000억 달러와 거래 목적의 체킹 계좌 9000억 달러를 합산한 규모다.

은행들의 평균 예금금리가 1% 내외에 머무는 상황에서 주요 스테이블코인 플랫폼이 연 3~5% 수준의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자산 이동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은행권은 대규모 자금 이동이 대출 여력 축소와 지역경제 위축, 순이자마진(NIM) 하락으로 이어져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가상자산 업계는 이를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경쟁적 행위이자 혁신 억제라고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미 재무부 산하 차입자문위원회(TBAC)는 지난해 4월 공개한 '디지털 머니'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조6000억 달러가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동 가능한 '위험 노출(At-Risk)' 예금으로 분류됐다. 즉시 입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DDA)이 대부분이다. /자료 =TBAC

상원 수정안은 스테이블코인의 이자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보유자가 송금·결제·로열티 프로그램 참여 등 특정 활동을 수행한 경우에 한해 리워드·인센티브 지급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절충안을 담았다. 그러나 규정의 모호성으로 인해 양측의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주체가 은행 수준의 감독(자본·유동성·예금보험·소비자보호 등)을 받지 않으면서 예금과 유사한 효용을 제공하면 규제 차익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조문 표현이 모호할 경우 리워드가 잔고 확대를 위한 사실상의 이자 유인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발행사가 직접 지급하지 않더라도 거래소·제휴사의 현금성 혜택, 포인트, 캐시백 등 우회로가 열릴 수 있으므로 이를 차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가상자산 업계는 리워드가 예금 이자와 달리 네트워크·결제 활동에 비례한 인센티브라고 반박한다. 시장이 제휴나 프로모션 등을 통해 보상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막으면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고 결제 인프라로서의 성장 동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은행 자금 조달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발행사가 준비금의 100%를 은행 예금으로 보유할 경우 시스템 전체의 예금 총량은 유지되나, 보유 주체가 개인에서 기관으로 바뀌면서 예금 분포 변화와 예금자 보호 한도에 따른 소비자 리스크 노출이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EC vs CFTC vs 재무부…가상자산 규제 관할권 논란

하원의 클래리티법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중심으로 한 신속 등록 체계를 제안한 것과 달리, 상원 은행위원회 수정안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재무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며 디지털 자산 시장을 다층적으로 규율하는 구조를 택했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폴 앳킨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의 취임 선서 행사에 참석을 하고 있다. 2025.04.23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하원안은 규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 등록(expedited registration)' 절차를 도입하고, 규칙 제정 전이라도 신청만으로 '잠정적 지위(Provisional Status)'를 부여해 기업의 영업 연속성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장의 조속한 제도권 편입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반면 상원안은 SEC의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재무부의 불법 금융 감시 기능을 결합했다. 특히 '부수자산(ancillary asset)'이라는 법적 개념을 신설해 디지털 자산의 발행 행위와 자산 자체를 분리 해석하려 한다. 토큰 발행 시점에는 증권법(SEC)의 규율을 받되, 유통 시장에서는 상품(CFTC)으로 취급되는 이중 위상 모델이다.

부수자산은 투자계약(자금조달·판매 약정) 과정에서 함께 제공·배포된 토큰 가운데, 보유자에게 발행 주체에 대한 지분·채무, 배당·이자 등 지급청구권이나 청산권 같은 금융적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2차 거래를 증권 거래로 보지 않겠다는 취지다. 발행 주체는 SEC에 자기인증(self-certification)을 제출하고 반기별로 기술 및 리스크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규제의 정량적 기준에서도 양측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하원안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지분율이 20% 미만인 '성숙한 블록체인'을 상품으로 자동 분류하는 수치 기준을 제시했다. 반면 상원안은 SEC가 네트워크의 분산 정도를 주기적으로 인증하는 정성적 판단 구조로 대체했다. 네트워크가 관련자들의 공동 통제(common control)에 놓이지 않았는지, 자산의 가치가 발행 주체의 노력에 계속 좌우되는지를 SEC가 직접 검증하겠다는 의미다.

(다보스 로이터=뉴스1) 강민경 기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56회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26.1.20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다보스 로이터=뉴스1) 강민경 기자

이는 이더리움(Ethereum)과 같은 대형 자산에도 딜레마를 던진다. 리도(Lido) 등 유동성 스테이킹 프로토콜의 점유율이 2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하원의 정량 기준을 적용하면 이더리움의 법적 지위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반면 상원안을 적용할 경우 SEC의 주관적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 업계의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전 세계 노드를 전수 조사해 실질 지배력을 판별하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소형 프로젝트들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무부의 역할 확대도 상원안의 핵심 변화 중 하나다. 상원안은 자금세탁방지법(BSA) 요건을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 적용하며 고객확인(CIP) 및 해외자산통제국(OFAC) 제재 준수 의무를 명문화했다. 특히 디지털 자산 키오스크(ATM)에 대해 고객 정보 고지 및 환불 제도 등 운영 프로세스를 연방법 수준으로 규정하며 재무부의 직접 관리를 받도록 했다.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탈중앙화 금융(DeFi) 영역에 대한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부과다. 상원안은 브로커와 딜러의 정의를 디파이 지갑 서비스까지 확대해 재무부의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려 한다. 디파이가 중개자 없는 시장을 표방하더라도 밸리데이터 분포나 거버넌스 구조를 통해 실질적인 '운영 주체'를 특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가상자산 업계는 자산을 직접 통제하지 않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지우는 기술적 검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 제정 전 행정부가 먼저 움직였다...리플을 연방 신탁은행으로 지정

의회의 입법 절차가 공전하는 사이, 행정부와 감독당국은 인허가권을 활용해 가상자산 시장을 기존 금융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는 독자적 행보에 나섰다.

통화감독청(OCC)은 지난해 12월 써클, 리플, 비트고, 팩소스, 앵커리지 디지털 등 가상자산 기업 5곳의 국법신탁은행(National Trust Bank·NTB) 설립을 조건부 승인했다. 해당 기업들은 이번 승인으로 연방 규제 체계 아래서 디지털 자산을 합법적으로 수탁·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NTB는 예금 수신과 예금보험 가입이 불가능하지만,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와 결제·정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 시스템 안쪽'으로 들어오는 통로로 해석된다.

암호화폐 리플 시각물. ⓒ 로이터=뉴스1

이러한 행정부의 움직임을 두고 금융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감독당국은 가상자산 시장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들을 감독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자본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시장의 불투명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통 은행권은 이를 규제 우회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NTB가 예금을 받지 않더라도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관리나 기관 대상 커스터디 서비스를 확대할 경우 실질적으로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FDIC의 엄격한 자본 요건과 감독은 피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은행권은 클래리티법 등 시장 구조 법안을 통해 의회가 정리해야 할 영역을 감독당국이 인허가를 통해 선제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의회의 입법이 완료되기 전 OCC가 자체 지침만으로 디지털 자산 특화 신탁 인가를 추진하는 것이 행정절차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소송 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상원 수정안에는 금융지주회사(FHC)가 법상 허용된 범위 내 활동을 디지털 자산이나 블록체인 시스템을 활용해 수행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해당 조항은 블록체인을 통한 금융 서비스를 은행지주회사법(Bank Holding Company Act)상 '금융적 성격의 활동'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는 금융지주회사에 새로운 사업 영역을 포괄적으로 허용하기보다는, 기존에 허용된 금융 활동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로에 선 클래리티법: 세 가지 시나리오

연방 차원의 입법 절차가 지연됨에 따라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 지형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재편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수익 창출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 배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스테이블코인 보유 리워드는 금지하되, 실제 결제나 송금 등 네트워크 활성화에 기여한 활동 기반 인센티브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절충안이다. 상업은행이 우려하는 예금 이탈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가상자산 산업의 최소한의 성장 동력을 보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성패는 활동 인센티브가 사실상의 이자로 변질되지 않도록 발행사와 유통 플랫폼 간의 규제 경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은행권의 요구가 전면 수용돼 스테이블코인과 연동된 모든 형태의 수익 지급이 금지되는 경우다. 발행사뿐만 아니라 거래소, 플랫폼, 제휴 파트너를 포함한 유통망 전체에서 잔고 유지에 대한 유인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은행 예금의 지위는 견고해질 수 있으나, 혁신 동력을 잃은 미국 내 가상자산 기업들이 규제가 우호적인 해외 관할권으로 거점을 옮기는 이른바 '디지털 엑소더스'가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연방 표준 제정이 무산되고 각 주가 독자적인 법체계를 구축하는 규제 파편화다. 이미 일부 주에서는 연방 정부의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한 독자 행보에 나섰다. 와이오밍주는 올해 1월 미국 최초의 주 발행 스테이블토큰인 '프런티어 토큰(Frontier Token)'을 공개했으며, 캘리포니아는 디지털 금융자산법(DFAL) 체계를 통해 라이선스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 역시 비트라이선스(BitLicense)와 신탁 인가를 통해 발행 및 유통 경로를 관리하고 있다.

연방 차원의 단일 기준 대신 주별 규칙이 시장의 실질적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가상자산 기업들은 다중 규제 준수에 따른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된다. 나아가 기업들이 유리한 법적 환경을 갖춘 주를 골라 거점을 정하는 이른바 '규제 쇼핑'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클래리티법을 둘러싼 싸움은 단순한 법안 통과 여부를 넘어, 디지털 자산을 금융 시스템의 보완재로 볼 것인지 대체재로 볼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주도권 다툼이다. 법안이 중간선거 일정에 밀려 또 한 번의 의회 임기를 허비하게 된다면,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입법부가 아니라 시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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