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파도가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때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을 향해 무역 불균형 시정을 주장하며 관세를 인상했고,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 국면에선 역할 분담까지 요구했다. 한국은 수출과 에너지 안보의 이중 압박을, 일본은 대미 통상 협상과 평화헌법의 제약 속 안보 역할 확대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질서의 급변,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공급망 재편, 중동 리스크, 기술 패권 경쟁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한일은 공통의 압박을 받는 두 중견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관계는 기존처럼 과거사에 대한 기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머니투데이가 오는 2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 호텔에서 개최하는 제14회 글로벌 콘퍼런스 '2026 키플랫폼'(K.E.Y. PLATFORM 2026)에서 일본 특별세션 '한일, 생존의 연대: 공통의 압박, 공동의 전략'을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세션은 한일관계를 더 이상 감정의 프레임이 아니라 전략의 프레임으로 읽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위에 있다.
중요한 건 한일이 '압박받는 동맹국들'이라는 수동적 서사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중견국 연대'라는 새로운 활로를 탐색하고 있다. 각자 대응하던 과거와 달리, 공통의 압박 앞에서 공동의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는 인식이 양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2026 키플랫폼' 일본 특별세션에서 강연하는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3년 미국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전후로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의지 하에 한일관계가 개선됐다면 지금은 정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관계가 방어적 협력에 그치지 않고 실용적 정책 조율과 전략적 공조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관계 개선에 공들이고 있는 이재명 정부와 다카이치 내각이 통상, 공급망, 에너지, 기술 표준 같은 실질 의제에서 접점을 넓혀 간다면 한일 협력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기대만으로 전략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대를 제대로 아는 일이 먼저다. 이번 콘퍼런스가 일본 정치, 사회, 미디어, 역사, 시민사회, 정책을 모두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에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그만큼 익숙하다는 이유로 피상적으로 소비되기 쉬운 대상이기도 했다. 관광의 이미지, 과거사의 감정, 빈번한 외교 갈등이 우리가 바라보는 일본의 대체적인 모습이었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협력의 언어가 의지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이즈미 카오루 규슈대학 교수(한국연구센터장)는 23일 콘퍼런스에서 일본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계획이다. 특히 다카이치 정부의 계보와 특징을 분석해 향후 한일관계와 관련해 어떤 정책을 펴나갈지 그 전망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즈미 교수는 머니투데이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진행한 사전 인터뷰에서 "일본의 기본적인 외교·안보 노선이 급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도 다카이치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강경 발언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일본 정치의 구조를 잘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다카이치 총리가 상징하는 보수성 못지않게 그를 둘러싼 자민당의 질서와 관료 시스템, 미일동맹의 틀이 일본의 한일관계 정책에 함께 작동한다는 의미다.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넘어 구조를 읽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방산, 인공지능 인프라에서 경쟁한다. 동시에 공급망, 투자, 표준, 기술 이전, 시장 접근에선 협력하지 않으면 비용이 급증한다.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교수는 민간 교류와 전문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일 양국을 잇는 핵심 인재와 기관의 체계적 교류, 그리고 차세대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가타 교수는 "우호적 한일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 가능한 분야부터 차근차근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일관계는 정부만의 관계가 아니다. 두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소비하는지가 외교의 바닥을 형성한다. 일본 사회가 한국을 보는 시선이 어떤 서사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읽는 일은 일본인들의 인식 지형을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150년 전통의 일본 서일본신문사에서 20년 넘게 취재 활동을 해온 히라바루 나오코 기자는 일본 미디어가 형성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인식 구조를 분석해 한일 협력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짚을 예정이다. 한일 양국은 서로를 실제보다 뉴스 헤드라인으로 먼저 만나는 경우가 많다. 갈등 기사만 반복되면 거리감은 더 커진다. 히라바루 기자는 "일본은 이렇다, 한국은 저렇다고 단정하기보다 인식의 차이와 공통점, 다양성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무라 다카시 후쿠오카여자대학 교수의 강연 주제 '갈등의 기억, 협력의 미래: 전략 공조 시대, 한일 시민사회의 협력적 토대'는 이번 콘퍼런스의 매우 중심적인 사유이자 뜻깊은 가치다.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과거를 덮자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협력의 지속성을 약화시킨다. 갈등의 기억을 정직하게 직시하되 그 기억이 현재의 협력을 영구히 봉쇄하는 방식으로는 작동하지 않도록 양국 시민사회에서 토대를 다지는 일이 필요하다.
한일 협력은 정상회담의 문장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한일의 대학, 언론, 지역사회, 기업, 연구자, 청년세대 등이 어떤 공통의 이해 기반을 만들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역사, 시민사회는 외교의 주변부가 아니라 한일관계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오독립 와세다대학 도시·지역연구소 초빙연구원의 문제의식은 이 대목을 사회학적으로 밀어 올린다. 오 연구원의 강연 주제는 '선을 긋는 일본인, 선을 넘는 한국인: 한일 사회의 차이에 대한 재고'다. 오 연구원은 사전 인터뷰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오해가 많은 이웃"이라며 "일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관계 개선과 실질적 경제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일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갈등을 어떻게 피하며,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지는지 알지 못하면 정치적 합의도 경제적 협력도 공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을 긋는 사회와 선을 넘는 사회가 만날 때 생기는 오해를 해소하지 못하면 협력은 쉽게 비틀어진다. 일례로 일본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문화가 강하다거나 느린 사회라는 우리의 선입견에 대해 오 연구원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해결 주체가 누구인지 먼저 따지는 사회"라며 "일본의 느림은 꼼꼼함이기도 하고 제도를 확정하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 검증을 길게 가져가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의 시대, 한일 협력의 미래: 국제질서 변화 속 한일 파트너십의 재설계'를 주제로 강연하는 최은미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 아래 한일이 어떤 방식으로 공동 대응 전략을 설계할 수 있을지를 짚을 예정이다. 한일관계는 늘 역사와 감정의 렌즈로 과잉 해석되곤 했지만, 실제 외교와 산업은 국익과 리스크 관리의 문제로 움직인다. 관세, 투자, 방위산업, 에너지, 공급망, 기술 표준과 같은 구체 의제에서 한일이 어떤 공동 전략을 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한일 협력의 미래는 '좋은 관계를 만들자'는 구호보다 '어떤 문제를 함께 풀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한국과 일본은 급변하는 국제질서의 영향을 각각 버텨내야 하는 나라가 아니라 같은 구조적 압력 아래 서로의 선택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이가 됐다. 일례로 한일 모두 대미(對美)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더구나 한일은 공통의 미래 과제를 안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지역소멸, 성장둔화, 산업 재편, 기술 경쟁, 에너지 안보, 북한 리스크 등 공통의 문제가 많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를 먼저 겪어본 나라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이 놓친 기회를 더 민감하게 포착해야 한다. 두 나라가 서로를 비교와 우열의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공동 학습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일본 연구는 그래서 단순한 지역학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 전략을 구성하는 실용 학문이 된다. 이즈미 교수는 "일본과 한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교류가 안정적으로 확대되면 양국 간 인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2026 키플랫폼' 일본 특별세션은 이러한 실용성을 지향한다. 일본 내부의 논의를 직접 듣는 드문 기회라는 점이 첫번째 실용성이다. 일본에 대한 외부적인 해설이나 요약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과 현장 기자의 언어로 실제 현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다. 한일관계를 감상이 아니라 구조와 전략으로 이해하는 자리로서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에서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볼 계획이다. 한국이 일본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한일관계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이유를 짚어보고, 공통의 압박 속에서 공동의 전략이 왜 가능한지 살펴볼 예정이다.
한일관계의 중요성은 과거를 지우자는 데 있지 않다. 미래를 준비하자는 데 있다. 일본을 이해하자고 해서 일본을 좋아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한국의 선택이 정교해지기 때문에 일본 이해를 강조하는 것이다. '2026 키플랫폼' 일본 특별세션은 이러한 과정의 출발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