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치를 지탱하던 가장 강력한 축이었던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동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UAE가 사우디 주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플러스) 탈퇴를 전격 선언하며 중동 석유 카르텔의 균열을 공식화했다. OPEC+는 OPEC에 러시아 등이 가세해 확장된 조직이다.
이번 탈퇴 선언은 단순히 생산량 조절의 문제를 넘어, 모함마드 빈자이드 알나하얀(MBZ) UAE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MBS) 사우디 왕세자라는 두 권력자 사이에 축적된 정책적 대립과 감정적 갈등이 폭발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가발전 비전과 전략을 두고 각자 다른 방향을 보는 두 지도자가 중동 내 주도권을 둘러싼 패권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알나하얀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는 과거 24살의 나이 차이에도 '중동의 브로맨스'로 불릴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자랑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5년 빈살만의 아버지가 사우디 국왕으로 즉위하고 빈살만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아부다비 왕세자였던 알나하얀은 정치 신예였던 빈살만의 '멘토'를 자처했다. 그는 자신의 미국 내 인맥을 총동원해 빈살만을 "사우디의 미래를 바꿀 리더"로 홍보하며 그의 권력 승계 과정을 막후에서 지원했다.
이들은 예멘 내전 공동 개입(2015년), 카타르 단교 조치(2017년) 등을 주도하며 중동 현안마다 한목소리를 냈다. 2016년 두 사람이 사막에서 함께 캠핑과 매사냥을 즐기는 모습은 동맹 이상의 유대를 상징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빈살만은 알나하얀의 가장 뛰어난 제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브로맨스는 빈살만이 왕세자에 오르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사우디 실권자로 거듭난 빈살만은 2020년 '사우디 비전 2030'을 통해 독자적인 리더십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이는 중동의 대표적인 사제 관계가 적대적 라이벌로 급변하는 계기가 됐다.
빈살만의 경제 개혁은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 지위를 지켜온 UAE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빈살만은 외국 기업들이 지역 본부를 리야드로 옮기지 않으면 정부 사업권을 주지 않겠다고 압박하는 한편, 네옴(NEOM) 프로젝트 등 공격적인 투자 유치로 UAE를 밀어붙였다. UAE로선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적 영토를 침범당한 셈이다.
석유 정책에서도 두 사람은 대립했다. 사우디는 고유가를 유지해 국책 사업 자금을 확보하려는 '감산' 전략에 집중했지만, UAE는 생산 능력을 풀가동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 미래 산업 자금을 빨리 회수하려는 '증산' 노선을 택했다. OPEC 내부에서 반복되던 이 전략적 충돌은 이란 전쟁과 맞물리며 UAE의 OPEC 공식 탈퇴 선언으로 이어졌다.
안보 갈등 역시 심각하다.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가 정부군을 지원할 때, UAE는 예멘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2년 빈살만은 UAE의 독자 행보에 분노해 "과거 카타르에 했던 것과 비슷한 경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사우디는 카타르의 친이란 세력 지원을 문제 삼아 2017~2022년 UAE와 함께 카타르에 외교 단절을 선언하고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스승을 보는 제자의 시선이 차갑게 식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중동 권력 구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컬럼비아대의 카렌 영 교수는 블룸버그에 "이번 선언은 양국의 '경쟁적 관계'를 공식화한 것"이라며 "UAE는 더 이상 사우디의 하위 파트너로 남기를 원치 않는다"고 진단했다. 가디언의 패트릭 빈투어 외교전문편집장 역시 "단순한 비즈니스 결정을 넘어선 '정치적 선전포고'"라며 "UAE가 경제적 연대 대신 독자적 생존을 선택하면서 사우디의 위신에 치명타를 입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