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정책의 핵심 브레인이 중국이 직면한 디플레이션 우려가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30년' 초기와 닮았단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여전히 중진국인 중국은 일본과 달리 막대한 성장 여력과 혁신 기술의 상업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단 것. 다만, 지도부의 과도한 성장 목표 제시가 잘못된 부동산 투자 심리를 불러와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단 점은 인정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보장, 의료, 연금 체계 개혁을 통한 소비진작이 시급하다는게 그의 정책 조언이다.
바이충언 칭화대 경제관리학원 학장은 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중국이 직면한 부동산 시장 침체와 정체된 소비자물가, 불안정한 고용시장은 일본의 장기 침체가 시작된 1990년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2015~2018년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낸 바이 교수는 중국 최고 국정 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자 중국 5개년 개발계획 입안 자문위원이다. 정부 경제전략 자문 네트워크의 핵심 정책형 경제학자다.
최근 중국 경제학계에선 중국이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우려가 크단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물가 하락에 이은 소비 위축의 악순환이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앞서 허샤오베이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교수는 SCMP를 통해 "일본의 경험은 중·장기적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 인식이 고착화되면 그 인식을 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중국 역시)저물가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바이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 발전 단계"라며 "중국은 아직 중진국으로 여전히 막대한 성장 여력이 있지만 일본은 버블 붕괴 당시 이미 완전히 성숙한 고소득 국가였다"고 반박했다. 중국 기업들의 추진력과 방대한 인재풀도 중국이 1990년대 일본과 다른 핵심 근거로 꼽았다. 그는 "일본 기업 역시 혁신적이었지만 그 혁신을 상업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반면 중국 기업의 강점은 상업화 능력"이라고 했다. 그는 "(인구가 많은)초대형 시장에선 혁신의 수익률이 높고 기술 상업화 시 더 큰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며 14억이 넘는 인구가 기업 혁신이 상업화로 연결되는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매년 대규모 엔지니어와 연구인력을 배출하고 있다"며 "1인당 GDP(국민총생산) 수준을 감안하면 중국 고등교육 수준 역시 매우 높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식 국가 주도 금융시스템 역시 일본과의 차이점이란 게 바이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중국은 자산 가격 조정이 발생해도 전체 자금 조달 규모가 크게 위축되지 않는다"며 "특히 산업 발전을 위한 자금 공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과 증시 붕괴가 신용 경색과 기업투자 위축으로 연결되는 일본과 달리 은행 대부분이 사실상 국유제인 중국에선 중앙정부가 신용 공급 방향을 조정하는 게 가능하단 뜻이다.
다만, 바이 교수는 잘못된 성장 목표 제시와 이에 따른 성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만들어 내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단 점은 인정했다. 특히 부동산 시장 침체를 성장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불러온 대표적 역효과로 꼽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 경제가 계속 7~8%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부동산에) 투자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5%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공급과잉 문제가 나타났다"며 "비현실적 전망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행동하면 결국 역효과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바이 교수는 앞서 경제매체 디이차이징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제시한 올해 성장 목표에 대해 "중국 경제는 올해 많은 위험과 도전에 직면한 만큼 기존 성장 모델을 전환해야 한다"며 "따라서 구간 설정 방식의 성장 목표 제시는 매우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4.5~5%로 제시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정부가 설정한 가장 낮은 목표치다.
이에 바이 교수는 내수를 살릴 정책 개혁 추진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은 (장기 디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아베노믹스'를 내놓았지만 너무 늦었고 오랫동안 명확한 방향성이 없었다"며 "중국이 얻어야 할 교훈은 조기에 명확한 전략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단순 소비 진작이 아니라 사회보장과 의료, 연금 체계를 개선해 소비 기반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사람들이 의료와 노후에 대한 불안을 덜 느끼게 되면 소비심리 역시 자연스럽게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정부와 중앙은행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이를 2차 시장에서 매입해 개혁 비용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 교수는 교육 시스템에도 일정 부분 개혁이 필요하단 점을 시사했다. 특히 한국의 수학능력시험 격인 '가오카오(高考)'가 혁신적 인재 양성에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단 게 그의 시각이다. 표준화 시험 중심 선발 방식이 창의성을 일정 부분 억눌러 '중국판 일론 머스크' 배출을 가로막을 수 있단 것. 다만 그는 "가오카오는 계층 이동을 보장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 쉽게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바이 교수는 "대학 이후 단계에서 혁신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해외 인재 유치는 미국의 강점이었고 중국 역시 이 같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