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세계경제 침체" "자본 우선순위 바뀐다" LA 모인 큰손들 경고

LA(미국 캘리포니아)=심재현 특파원
2026.05.09 12:01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상)

[편집자주] 전 세계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이 4일(현지시간) 미국 LA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투자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이란 전쟁, 인공지능(AI) 산업 가속화와 맞물려 그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효율성과 수익률의 공식보다는 지정학적 충돌과 AI 기반의 산업구조 재편이 자본의 향방을 결정하는 새로운 잣대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마다 열리는 밀컨콘퍼런스는 경제뿐 아니라 국제정치, 안보 등을 폭넓게 다뤄 '미국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린다.

① "반세기 시장의 룰 바뀐다"…이란전쟁·AI 열풍에 '자본재편' 가속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4일(현지시간)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콘퍼런스는 6일까지 열린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지금 시장은 지난 50년 동안의 구조에서 벗어나 우선순위가 재편되는 과정의 시작점에 있다." (하비 슈워츠 칼라일 최고경영자)

콘퍼런스 참가자들은 투자 패러다임 변화가 단기적인 자산 배분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슈워츠 칼라일 CEO는 "미국과 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로 가속화한 안보 환경 변화 대응이 국방을 넘어 에너지, 데이터, 핵심 인프라, 공급망을 모두 포함하는 경제 엔진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낮은 비용을 찾아 전 세계로 자본이 흩어졌다면 이제는 안보와 신뢰가 담보된 지역으로 뭉칫돈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희토류·구리 등 원자재와 에너지·전력망 인프라에 대한 최근의 폭발적인 투자가 대표적이다.

또한 AI 열풍은 단순한 IT 산업 확장을 넘어 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망을 포함한 수조달러 규모의 재산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는 새로운 산업이나 경제의 한 부문이 아니라 산업 자체를 다시 만드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니엘 심코위츠 모건스탠리 공동대표는 "자본은 이런 혁신을 주도하는 인프라와 이를 비즈니스에 민첩하게 적용하는 '승자'들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자본 이동의 축이 서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아랍에미리트(UAE) 무바달라 투자공사의 왈리드 알 모카라브 알 무하이리 차석 CEO는 "중동과 아시아 자본이 대체 투자자가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너진 레드라인·고조된 불확실성…"자본 좌표 바뀐다" 밀컨의 경고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4일(현지시간)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콘퍼런스는 6일까지 열린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글로벌 자본시장의 풍향계로 불리는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이 주목한 키워드는 '구조적 변곡점'이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저물가·저금리·효율성 중심의 질서가 저물고 전쟁과 지정학적 위기, 인공지능(AI) 혁명이 결합한 '안보와 기술의 시대'가 자본 배치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적시생산 가치 종말"… 안보가 지배하는 자본 지도

하비 슈워츠 칼라일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시간) 열린 콘퍼런스 대담에서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공식이었던 '적시생산' 시스템의 종말을 선언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시적인 변수가 되면서 재고가 비효율이 아닌 안보자산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안보가 국방을 넘어 에너지, 데이터, 핵심 인프라 사수로 직결되고 자본은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론 오한리 스테이트 스트리트 CEO 역시 "절대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이 전쟁으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본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3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중동 국부펀드 자본이 자본 수출보다는 자국 내 안보와 인프라 구축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런 방향 전환이 글로벌 자본 비용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자재 시장 급변… "단기 등락 아닌 체제 전환"

콘퍼런스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원유, 가스, 금속, 농산물을 포함한 원자재 시장에 대한 시각 교정이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의 움직임이 수급 사이클에 따른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았다.

기후 위기·전쟁으로 위협받는 농산물과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이 단순한 상품을 넘어 전략적 생존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존 그레이 블랙스톤 CEO는 특히 투자자들이 무형의 기술적 불확실성 속에서 손에 잡히는 실물 자산 시장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에너지 전환과 전쟁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창고, 에너지 시설, 데이터센터 같은 실물 자산이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와 전쟁… 자산배분 공식 뒤집혀

AI 혁명 역시 국가 안보와 결합하면서 자산배분 전략을 뿌리부터 흔드는 변수로 지목됐다. 다니엘 심코위츠 모건스탠리 공동대표는 "현재 AI 자본 배치는 전체 사이클의 10~15%에 불과한 초기 단계"라며 "AI와 국가 안보 기술, 언어 모델 기술이 하나로 수렴되면서 자본은 이 혁신을 주도하는 인프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의 향방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시장의 독보적인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구조적 변화 속에서 생겨나는 '틈새 기회'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코위츠 공동대표는 "유럽의 경우 전체적인 성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자본이 필요한 기업들 사이에서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의 기술력과 자본시장 구조 개선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콘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한 자산운용가는 "과거에는 가장 싼 곳을 찾아 자본이 움직였다면 이제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통제 가능한 곳을 찾아 자본이 재배치되고 있다"며 "수익률 숫자가 아니라 정치·정책적 안정성과 물리적 안보가 새로운 투자 좌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③ "미·중 빼고 버티기 힘들 것"…IMF, 전세계 경제침체 경고

/로이터=뉴스1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내년까지 이어지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125달러 수준으로 유지되면 미국과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경고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 경제 싱크탱크 밀컨연구소 주재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전쟁이 장기화하면 물가가 치솟는 것은 물론, 공급망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IMF가 지난달 공개한 세계경제전망 기본 시나리오에서 올해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3.1%로 둔화하고 물가는 4.4%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 전망도 "이미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의 여파가 올해 내내 이어지면서 GDP 성장률이 2.5%로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이 5.4%로 치솟는 상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내년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이나 중국은 버틸 수 있겠지만 상당수 국가가 깊은 경제 침체에 빠질 것"이라며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경기 수축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동석한 미국 석유기업 셰브런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도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된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미 몇주 전에 폐기됐다"며 "아시아 지역에선 이미 경제 타격의 징후가 보이고 유럽이 그 뒤를 이을 분위기"라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다시 충돌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상당수 국가들이 이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버티기 쉽지 않다는 우려다.

이날 브렌트유 7월물 선물 종가는 배럴당 114.44달러로 전장보다 5.8% 상승했다. 6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6.42달러로 전장보다 4.39% 올랐다.


美국방부 '월가 시프트'…"中 경제전쟁, 사모펀드 모델로 맞대응"

조지 콜리티디스 미 국방부 경제방위국(EDU) 국장(왼쪽)이 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미국 국방부에 사모펀드(PEF) 모델을 이식하겠다."

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에서 조지 콜리티디스 미 국방부 경제방위국(EDU) 국장은 '경제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가 단순히 돈을 주는 시대는 끝났다"며 "국방부도 경제적 지분을 확보하는 훨씬 더 전통적인 상업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펜타곤 관료주의 대신 '딜'이 지배하는 국방부로"

콜리티디스 국장은 국방부 내 신설 조직인 경제방위국을 이끈 지 8개월 된 인물로 월가의 투자·운영 전문가이자 유명 총기제조업체 레밍턴 아웃도어 대표 출신이다. 그는 펜타곤이 직면한 최대 과제로 '비효율적인 인프라'를 지적했다. 원가 기반 계약과 과도한 규제가 공급업체와 정부 모두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콜리티디스 국장은 "경쟁국인 중국은 이미 30년 가까이 경제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왔다"며 "미국 역시 냉전 이후 잊어버렸던 '경제 전장'의 개념을 되살려 거래 중심의 실전적 접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급망 재편 가속…中 고립작전

콜리티데스 국장이 밝힌 EDU의 핵심 전략은 '재건'과 '차단'으로 요약된다. 중국이 장악한 희토류 가공 및 산업화 단계를 미국의 공급망 체계에 재건하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산업·물류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대영제국이 전 세계 항만과 석탄 공급망을 통제해 패권을 유지했듯 현대적인 산업적 차단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를 위해 사모펀드와 레버리지 금융 출신의 인재 채용을 대폭 확대했다. 재무 모델링, 거래 구조화, 협상 능력을 갖춘 '딜 메이커'들이 펜타곤의 새로운 핵심 전력으로 부상하는 추세다.

◇"방산 '전시 체제'… 생산속도 최우선"

콜리티데스 국장은 방산업계의 '전시 체제' 전환도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지금까지 방산 기업들은 납기 지연이나 비용 초과에도 큰 제재 없이 운영됐지만 이제는 생산 계획과 실행을 훨씬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팔란티어(Palantir)와 같은 IT 기업의 데이터를 활용해 공급망을 정밀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란 전쟁 과정에서 불거진 탄약 부족 문제에 대해 "부족 상태라기보다 생산 능력을 회복하는 '성장 단계'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며 "다중 생산 체계를 복구해 생산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국방전략 무게추, 경제적 실력행사로

대담 마지막에는 EDU의 고문이자 서버러스 캐피털의 창립자인 스티브 파인버그와의 협력 관계도 언급됐다. 콜리티데스 국장은 "파인버그는 25년 넘게 이 분야에 먼저 투자해 온 인물"이라며 월가의 강력한 자본 운영 노하우와 공격적인 업무 스타일이 미 국방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대담을 지켜본 월가 한 인사는 "미국의 국방 전략이 무기 체계를 넘어 전 세계 공급망과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경제적 실력 행사'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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