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에어컨에 인색한 유럽 문화…너무 더워 병원·학교 마비

유럽에서 전례 없는 폭염으로 사상자가 잇따르자 에어컨이 '필수재'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설치비용을 삼삼오오 마련하고 급진적인 환경 보호 정당도 병원 등 필수시설에는 설치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냉방할 권리'가 주요 쟁점이 될 조짐이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그동안 유럽은 건물 미관, 환경 보호 등을 이유로 에어컨 사용에 부정적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최근 폭염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삼성전자(339,500원 ▼19,000 -5.3%)는 로이터에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주요 시장에서 에어컨 제품이 올해 상반기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 가전업체 미디어도 지난달부터 폭염으로 에어컨 판매량이 급증해 중고 제품 가격이 신제품을 넘어설 정도라고 전했다. 영국 런던의 마리사 파크스씨는 "이번 폭염은 뭔가 다르다"며 "남편과 휴대용 에어컨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품절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에어컨 설치 여부가 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독 에어컨 설치에 소극적이었다. 주택 에어컨 보급률은 지난해 기준 24% 수준. 에어컨이 설치된 학교는 14%다. 의료시설은 40%, 대중교통은 7%다.
국제환경개발연구센터(CIRED)의 프랑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80%가 에어컨이 환경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니스의 한 시민은 "내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에어컨 구매가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 거라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폭염이 이어지며 에어컨을 통해 냉방할 권리가 강조되고 있다. 우파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은 "극심한 폭염은 사람들을 죽인다"며 아예 모든 국민에게 에어컨을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좌파성향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대표는 "모든 곳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 탄소 배출량 증가라는 피해를 가중시킬 뿐"이라고 반박했다.
르펜의 주장이 당장 수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취약계층이 밀집한 병원, 학교 등 일부 시설에는 에어컨 설치가 필수라는 데 여론이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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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역 교통을 총괄하는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모빌리떼 회장은 2032년까지 모든 버스와 열차에 에어컨을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시장은 수도권 620개 학교에 1200대의 새 에어컨을 구입하기 위해 긴급 자금을 확보했다. 그레구아르 시장은 "다음 주말까지 파리의 모든 학교에 에어컨이 배송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프랑스 환경당 대표인 마린 톤델리에르는 학교와 병원에는 에어컨이 필요하다며 "이제 에어컨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곳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곳곳에선 냉방 시설이 부족해 학교, 병원, 관광지, 공공 기관 등 주요 시설에서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영국 잉글랜드 남부와 웨일스 지역 학교 수백곳이 휴교하거나 등·하교 시간을 조정했다. 일부 학교는 학부모들이 에어컨 설치 비용을 마련해 겨우 수업을 이어갔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한 법원은 에어컨이 고장나자 긴급한 재판 외 모든 재판을 중단했다.
파리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은 오후 4시부터 조기 폐장에 나섰다.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가 폭증하고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수술이 취소되는 사례도 생겼다. 버밍엄 대학교는 향후 4일 동안 폭염 여파로 영국에서 최대 4000건의 수술이 취소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에어컨은 양날의 검이다. CIRED는 최근 2070년부터 2100년까지 파리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극심한 폭염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에어컨 대신 녹지 공간 조성이나 건물 개조와 같은 '비에어컨' 정책만 계속될 경우 시민들이 하루 6시간 동안 체감온도 32°C 이상의 온도에 노출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건물이 밀집돼 있고 환기가 어려운 도심 지역에서는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이 국지적으로 기온을 1.75°C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에어컨의 환경 영향을 두고도 다양한 견해가 충돌한다. 프랑스 전력의 약 70%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다.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해도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문제는 크지않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에어컨에 사용되는 냉매가스 자체가 온실가스여서 문제라는 지적이 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