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러너들이 새로운 재미를 찾아 나섰다. 숨 막히는 아스팔트 위 기록 경합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자연과 교감하며 산길이나 숲길 등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반 러닝이 도로나 트랙 위를 달리는 거라면 트레일 러닝은 비포장 산길 같은 자연 환경 속에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러닝 인구가 늘면서 단순 기록 경쟁 대신 자연 속에서 러닝을 즐기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트레일 러닝이 도심 러닝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기록의 절대 비교가 어렵다는 데 있다. 같은 코스라도 완만한 흙길인지 험난한 산악 지대인지에 따라 기록이 달라진다. 또 그날그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이나 과거의 기록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 러너들에게 해방감을 준다는 평가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매번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트레일 러닝의 가장 큰 매력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토니 리치는 지난 20년 동안 러닝을 취미로 삼았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추며 매주 100㎞ 가까이 달렸다. 마라톤 기록 단축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는 최근 방향을 바꿨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 24㎞ 정도의 트레일 러닝을 즐긴다. "자연 속에서 기록에 대한 압박 없이 러닝을 즐기고 싶었다"는 게 그의 이유다. 러닝의 초점을 속도에서 경험으로 옮긴 것이다.
덴버에 사는 러너 아니카 이바노프 역시 도심 마라톤을 한번 완주한 뒤 트레일 러닝으로 전향했다. 그는 "로드 러닝이 잘 맞지 않았다"면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자연 속에서 한계를 마주하는 경험이 더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트레일 러닝은 흙길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부터 고산 지형을 오르는 스카이 러닝, 마라톤 거리인 42.195㎞를 넘는 초장거리를 달리는 울트라 트레일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세계적인 대회도 있다. 프랑스 샤모니에서 시작해 알프스산맥을 도는 '울트라트레일 뒤 몽블랑'(UTMB)이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100마일(약 160㎞) 경기인 '웨스턴 스테이츠 100'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러너들이 다음 단계를 찾고 있다고 본다. 스포츠 컨설팅업체 대표 스티브 홈버그는 "10㎞, 하프, 마라톤까지 경험한 러너들이 더 이상 새로운 도전을 느끼지 못하면서 트레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스포츠&피트니스 산업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트레일 러닝 참여율은 30% 증가했다. 2020년 도쿄 마라톤 여자 동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과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데즈 린덴 등 엘리트 선수들도 트레일 러닝으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트레일 러닝의 대중화 흐름은 운동화 업계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평소에는 아스팔트 위를 뛰다가도 가까운 공원 산책로나 흙길까지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이른바 '로드 투 트레일' 제품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브룩스, 나이키, 살로몬, 아디다스와 같은 브랜드들은 접지력과 내구성, 발 보호 기능을 강화하면서도 일반 러닝화에 가까운 착화감을 제공하는 제품들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