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반도체 투자 광풍이 미국 증시를 뒤흔들고 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가장 극적인 반전의 주인공은 인텔이다.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AI 시대 낙오자로 꼽히던 인텔은 AI 에이전트 등장으로 CPU 존재감이 커지면서 올해에만 주가가 239% 폭등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업체 샌디스크 역시 올해 558%에 달하는 상승률을 기록하며 반도체 광풍의 선봉에 섰다. S&P500 편입 기업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다. S&P500 지수에 편입된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 6주 동안 시총이 3조8000억달러(약 5500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과거엔 생성형 AI 학습을 위한 GPU(그래픽처리장치)에 집중되었다면 최근에는 수혜의 범위가 CPU(중앙처리장치)와 메모리 반도체 전반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24시간 스스로 판단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내는 'AI 에이전트'가 자리 잡고 있다. AI가 학습 단계를 넘어 실전 응용인 추론 단계로 진화함에 따라 연산 능력을 넘어 메모리에 저장된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가 핵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삭소뱅크의 루벤 달포보 투자전략가는 비즈니스 인사이더를 통해 "추론 단계는 연산 능력뿐만 아니라 속도와 대역폭, 전력 효율성을 동시에 요구한다"며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메모리 반도체를 가장 전략적인 자산으로 격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제조업체 마이크론의 경우 2023년만 해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지만 AI발 메모리 수요 급증으로 실적이 급반등했다. 올해 매출 전망치는 약 1070억달러로 2023년 대비 7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770억달러로 전망된다. 주가 상승세도 가파르다. 1년 사이 770% 폭등했다. 그러나 향후 12개월 순이익 전망치를 기준으로 한 주가수익비율(PER)은 S&P500 평균인 23배보다 낮은 8.9배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WSJ의 계산이다.
투자회사 야누스헨더슨에서 80억달러 규모로 기술혁신 펀드를 운용하는 조나단 코프스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반도체와 컴퓨팅 자원을 사들이는 자원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들도 투자 열풍에 올라탔다. 미국 온라인 증권사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에서 지난주 가장 많이 거래된 상위 10개 종목은 반도체 업체나 반도체를 구매하는 기술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미국 반도체 지수를 3배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SOXL도 포함됐다. SOXL의 지난 1년 수익률은 1200%에 달한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최고 전략가는 "현재 시장은 물론 경제 전체를 사실상 AI가 주도하고 있다"면서 "반도체주는 그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기억 속에서 이렇게 뜨거운 장세는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공급 부족 사태가 몇달 나아가 몇년 더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 반도체 종목의 추가 상승 여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각선 닷컴 버블과 너무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고 우려한다.
60대 베테랑 투자자인 피터 파인버그는 현 상황을 두고 "파티는 경찰이 들이닥치기 30분 전이 가장 즐거운 법"이라며 "투자자에게 가장 위험한 말은 언제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확신"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