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유튜버로 내공을 다진 20대 감독들이 극장가를 집어삼켰다. 이들이 연출한 영화가 최근 북미 박스오피스 1·2위를 나란히 차지하면서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제작비나 스타 마케팅 없이도 1020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돌려세우며 할리우드의 전통 흥행 공식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미스터리 공포 영화 '백룸'은 개봉 첫 주말 북미에서 약 8000만달러(약 1223억원), 전 세계에서 1억20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이 영화를 연출한 케인 파슨스 감독은 올해 겨우 20세다. 그는 백룸을 통해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할리우드의 최연소 감독에 등극했다.
'백룸'은 가구점 사장이 창고 밑에서 끝없이 펼쳐진 미스터리한 공간을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파슨스 감독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수년간 확장해온 온라인 괴담 '백룸' 세계관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백룸 흥행을 이끈 건 젠지 세대다. 백룸 배급사 A24에 따르면 북미 관객의 약 86%가 35세 미만이었고, 25세 미만이 66%, 21세 미만이 44%에 달했다.
백룸을 뒤쫓는 건 유튜버 출신 커리 바커(26) 감독의 초저예산 공포물 '옵세션'이다. 단돈 75만달러를 들여 약 20일 동안 만든 이 영화는 누적 수익 1억5000만달러를 돌파했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개봉 첫주 이후 관객이 줄어드는 것과 달리 옵세션은 2주, 3주차로 갈수록 관객이 늘어나는 이례적 현상도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젠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은 결과다.
두 작품의 성공은 영화관을 외면하던 젊은 세대도 자신이 익숙하게 소비하던 온라인 크리에이터가 만든 작품이라면 기꺼이 극장을 찾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두 유튜버의 돌풍 속에 일주일 먼저 개봉했던 디즈니와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는 3위로 내려앉았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두 작품의 흥행이 우연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마이클 드 루카 워너브러더스 모션픽처스 공동대표는 유튜버 출신 감독들의 강점으로 '사전 검증된 팬덤'을 꼽았다. 그는 "이들은 처음부터 구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작품을 발전시켰다"며 "극장에 걸리기 전 이미 유튜브에서 10억번의 테스트 시사회를 거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이번 흥행 돌풍이 할리우드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1980년대 MTV 출신 감독들이 뮤직비디오 감성으로 영화계를 뒤흔들고 1990년대 선댄스 영화제 출신 감독들이 독립영화 열풍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유튜브 숏폼 영상으로 실력을 키운 크리에이터들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채프먼대학교 영화대학 학장 스티븐 갤러웨이는 뉴욕타임스(NYT)에 "이건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라면서 "이들은 우리 시대의 영화계 반란군"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지금 할리우드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며 "젊은 관객들은 빠르고 신선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원하지만 이는 대형 스튜디오와 기존 감독들이 가장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다만 흥행작들이 모두 공포영화란 점에서 한계가 있단 지적도 나온다. 공포 장르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들어 신인 감독들이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NYT는 할리우드의 진정한 세대교체는 공포영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비슷한 성공 사례가 나올 때 비로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