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중동 지정학 위험에 또 요동쳤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를 통한 국제 원유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거란 우려가 시장이 퍼졌다.
8일 인베스팅닷컴·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아시아 시장에서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의 8월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5%가량 급등하며 배럴당 97.75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물도 4% 이상 뛰며 배럴당 95달러에 육박했다.
두 유종의 상승 폭은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타격 직후 3%대를 기록했다가 2%대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복 자제' 경고에도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보복에 나서고,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추가 공격에 나서면서 유가는 다시 뛰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이번 충돌은 지난 4월 미국과 이란이 합의한 휴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보여준다며 국제 원유 공급 차질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현재 우회 경로로 활용되는 홍해의 선박 운항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라피단에너지의 밥 맥낼리 대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새로운 교전은 중동 평화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기대했던 시장의 낙관론을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리서치업체 코모디티 텍스트의 로리 존스턴 창업자는 "진짜 위험은 휴전이 무너지고 전면적으로 다시 확산하는 것"이라며 "(이 경우) 에너지 생산 시설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포우 오일의 앤디 리포우 대표는 블룸버그에 "(중동에서의) 적대 행위가 확대될수록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정학적 위험이 커진다"며 "이란이 홍해에서 선박 운항을 제한하기 위해 추가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커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란 최고지도자실의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 국제문제 보좌관은 전날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도 차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친이란 세력 예멘 후티 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선박의 홍해 항해를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해는 예멘 후티 반군의 주요 활동 해역으로, 국제적으로 항행 위험이 큰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란 전쟁 이전에는 안전 문제로 유조선 운항이 활발하지 않았지만,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우회 경로로 주목받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중동산 원유와 화물 일부는 홍해를 통해 운송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서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우회 수출하고 있고, 국제 해운사들은 홍해 제다항을 새로운 중동 물류 허브로 활용하고 있다. 인도 정부 자료에 따르면 홍해 등 대체 항로를 이용한 중동 운항 서비스는 이란 전쟁 이전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 화물의 약 12%가 홍해를 통과한다.
한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전날 7월 원유 생산량을 하루 18만8000배럴 늘리기로 합의했다. 일반적으로 산유국의 증산 결정은 공급 확대로 이어져 국제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OPEC+를 비롯해 전 세계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는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증산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