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새 6명' 영국총리, 브렉시트 후 3년 못버티는 진짜 이유[WHY]

정혜인 기자
2026.06.23 14:18

[WHY]브렉시트 투표 이후 정치·사회 분열 심화,
'만성적' 경제난에 대한 대중 분노 극대화,
英 총리, 당·의회 지지 붕괴 시 쉽게 퇴출 가능

/그래픽=김다나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사임키로 하면서 영국이 10년새 7번째 총리를 맞이하게 됐다. 2016년 영국의 EU(유럽연합) 탈퇴 '브렉시트' 결정 후 영국이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는 평가다. 한때 의회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불리던 영국이 어쩌다 정치 불안국이 됐을까.

외신과 전문가들은 재임 기간 3년을 넘지 못하는 '영국 총리 잔혹사'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실패가 아닌 브렉시트 후유증과 경제 침체, 정당 체제의 균열이 복합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총리 교체가 상대적으로 쉬운 영국 정치제도도 한 배경이다.

브렉시트 파장→포퓰리즘 정당 부상

가장 먼저 손꼽히는 원인은 단연 '브렉시트 후유증'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영국의 모든 행정력과 정치적 에너지는 EU와의 결별 조건을 협상하는 데 매몰됐고, 국가의 명운이 걸린 구조적 개혁과 장기적 비전 설정은 뒤로 밀렸다. 브렉시트 여파로 노동당과 보수당이 구축한 양당 체제에 균열이 생겼고 이 틈을 타 나이젤 패라지 등이 이끄는 극단적 포퓰리즘 정당이 급부상하며 정치적 극단화를 부추겼다. 로이터통신은 "브렉시트는 영국 정치에 '지진과 같은 충격'을 남겼고, 이는 영국의 잦은 총리 교체 배경이 됐다"고 짚었다.

2026년 1분기 기준 영국의 분기별 GDP 성장률 추이 /사진=영국통계청

더 근본적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경기 침체다. 금융위기 이후 영국은 비대했던 금융서비스 부분 타격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성장률이 크게 둔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까지 이어지면서 국가 부채는 GDP의 약 100%에 달할 정도로 불어났다.

재정연구소의 폴 존슨 전 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최근 몇 명의 영국 총리들은 불행하게도 국민의 삶이 거의 20년 동안 나아지지 않아 (경제 상황이) 극도로 지친 국가를 물려받았다"며 영국의 만성적인 경기 침체를 총리 교체 이유로 들었다. 영국 경제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민생 회복에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는 구조로 추락하면서 총리의 정치생명에도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마음에 안 들면 바꾼다…총리 임기 10년새 반토막"

영국 특유의 정치 체제가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은 유권자가 총리를 직접 선출하는 게 아니라 하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의원내각제다. 총리는 집권당과 의회의 신뢰를 얻으면 이론적으로는 하원 임기(5년) 동안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다. 브렉시트 이전 영국 총리들의 평균 임기는 약 5년에 달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밖에서 총리직 사퇴 일정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하지만 집권당 내부의 신임을 잃거나 의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것도 영국 총리의 숙명이다. 브렉시트 이후 정치적 분열이 심화하면서 총리직 임기도 2~3년 수준으로 짧아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추진했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EU 잔류 실패로 투표 종료 후 20일 만에 사임했다.

후임자 테레사 메이(2016년 7월~2019년 7월)는 브렉시트 협상안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론으로 물러났고, 보리스 존슨(2019년 7월~2022년 9월)은 코로나19 봉쇄 기간 총리 관저에서 파티를 연 이른바 '파티 게이트' 등 각종 스캔들로 당내 지지를 잃으며 사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마지막 총리이자 찰스 3세 시대의 첫 총리였던 리즈 트러스는 감세안 파동, 금융시장 혼란 여파로 단 49일만에 사임을 발표, 영국 역사상 최단 총리로 기록됐다. 영국 최초의 인도계 총리로 주목받았던 리시 수낙(2022년 10월~2024년 7월)은 총선 패배로 물러났다.

스타머 총리는 2024년 7월 총선 압승으로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뤘음에도 역대급으로 낮은 인기와 국정·당 의제 설정 및 실행 능력 부족 등으로 취임 약 1년11개월 만에 사임을 발표했다.

영국 싱크탱크 정부연구소 해나 화이트 소장은 "브렉시트 과정을 거치면서 의원들은 특정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동맹을 구축하는 데 익숙해졌다"며 "한 번 반기를 들어본 의원들은 다음 번에도 쉽게 반기를 들며, 총리가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얻었더라도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SNS(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의원들 사이에 총리 교체 여론을 모으기 쉬워졌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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