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희귀 실버 달러 주화입니다. 10달러부터 시작합니다. 3, 2, 1, 낙찰!"
스마트폰 화면 속 타이머가 눈 깜짝할 새 카운트다운을 끝내자마자 수천 명의 접속자가 동시에 채팅창에 호가를 올린다. 가격은 순식간에 치솟고 최종 낙찰자가 결정된다. 얼핏 보면 화려한 경매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는 미국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 진행되는 모바일 실시간(라이브) 방송의 풍경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실시간 경매를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라이브커머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때 실패한 시장으로 여겨졌던 미국 라이브커머스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서비스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미국 시장에서는 라이브커머스가 통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미국 빅테크들은 한국과 중국에서 성공한 라이브커머스 모델을 자국 시장에도 안착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마존의 라이브커머스 '아마존 라이브'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메타플랫폼 역시 페이스북 라이브 쇼핑 서비스를 중단했다. 틱톡도 미국 시장에서 라이브 쇼핑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업계에서는 미국 소비자들이 이미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만큼 굳이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며 상품을 구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라이브커머스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한정 할인'이나 '최저가 혜택' 전략이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충분한 매력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가격 할인 대신 희귀 수집품을 실시간 경매에 부치는 새로운 방식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2019년 설립된 미국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왓낫(Whatnot)'이 있다.
왓낫은 자체 모바일 앱과 웹사이트를 통해 빈티지 스니커즈와 희귀 동전, 포켓몬 카드, 스포츠 트레이딩 카드 등 다양한 수집품의 실시간 경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판매자는 라이브 방송으로 상품을 경매에 부치고, 이용자들은 채팅창에서 실시간으로 입찰 경쟁을 벌인다. 왓낫의 최근 누적 주문 건수 10억건을 돌파했다. 특히 기업가치는 115억달러(약 17조9000억원)로 평가받는 등 미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의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왓낫의 성공 비결로 기존 라이브커머스와 차별화된 소비 경험을 꼽았다. 실시간 경매를 통한 참여와 경쟁의 재미, 수집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소통이 기존 모바일 홈쇼핑과 다른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희귀 수집품을 중심으로 한 실시간 경매 모델이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짚었다.
과거 빅테크의 라이브커머스 전략은 할인과 특가를 앞세운 모바일 홈쇼핑에 가까웠다. 하지만 왓낫은 희귀 수집품을 실시간 경매에 부치며 경쟁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소장 가치가 높은 수집품을 두고 단 몇 초 만에 낙찰자가 결정되는 경쟁 구조를 만들었다. 남보다 먼저 희귀 아이템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성취감, 이른바 '도파민 쇼핑' 심리를 정확히 공략한 것이다.
실시간 쇼핑과 커뮤니티의 결합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왓낫 이용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수집가들과 경쟁하고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방송에 모여 수집품의 가치와 시세 등 정보를 공유하고, 판매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자 커뮤니티의 구성원 역할을 한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실시간 경매 방송을 통해 쇼핑을 넘어 하나의 취미 활동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는 미국 소비문화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는 것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참여하는 경험 자체를 새로운 소비 가치로 여기고 있다. 최저가 경쟁으로는 실패했던 미국 라이브커머스가 실시간 경매와 커뮤니티를 앞세운 새로운 소비 경험으로 부활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